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원회 기자회견문
작성자 지부
본문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원회
금속노조 /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 금속노조 경남지부 / 민주노총 부산본부 / 민주노총 경남본부
임시연락 : 부산 : 유장현(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선부장) 011-9238-8013
경남 : 박유호(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직부장) 016-585-9681
<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규직 확대를 즉각 중단하라!
끝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린 고 김춘봉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고 김춘봉 노동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고인은 1980년 코리아타코마(경남 마산시 양덕동 974-15)에 입사하여 1991년 한진중공업(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5가 29번지)이 인수한이후 지금까지 청춘을 바쳐 일해왔습니다.
고인은 2003년, 마산공장폐쇄와 부산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2003년 4월 회사 관리자로부터 끊임없이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 왔습니다. 결국 고인은 마산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한진중공업과 직접계약하는 촉탁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고인이 촉탁직 2년이 다 되어가자, 사전 논의도 없이 고인이 근무하던 가스관리파트를 완전히 외주용역하기로 하고 고인이 요구하였던 촉탁직 유지를 거부하였습니다.
촉탁직 유지의 희망조차 꺽여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고인은 2004년 12월 27일 아침 7시, 또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의해 도장공장입구 계단에서 목을 맨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노무현정권과 총자본의 끊임없는 비정규직 확대정책이 김춘봉 노동자를 죽였다고 규정합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03년 10월 분신 자결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 2004년 2월 "비정규직 차별철폐"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결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열사의 처절한 외침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과 자본가들은 절박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외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추구의 이해와 요구만을 받아들여 지금도 여전히 파견근로자들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각종 법률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노동현장내 차별을 심화시킬뿐 아니라 일하고 싶은 청년들을 평생 안정된 일자리 한번 가져보지 못하도록 비정규직만 확대, 양산하는 모든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합니다.
자본가들에게도 요구합니다.
노동자는 더 이상 기계나 소모품이 아닙니다. 실컷 부려먹고 필요 없으면 희망퇴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온갖 구실을 붙여 청춘을 바쳐온 일터에서 쫒아내는 노동자죽이기를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시직, 계약직, 촉탁직, 사내하청, 용역 등 온갖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정규직화해야 합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차해도)는 비정규직보호를 위해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이 체결한 2003년 조합통일요구를 근거로 한진중공업측에 지난 5월 27일 공문을 보내 촉탁직을 정규직화 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사측은 지금까지 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야기한 불행한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받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버려야하는 비참한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끝장내기 위해 온힘을 다하여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창한),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지부장 문영만),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지부장 허재우), 민주노총 부산본부(본부장 최용국), 민주노총 경남본부(본부장 이흥석)등이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노동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과 노동단체 등 제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
1. 노무현정부는 파견법개악안, 기간제(계약직) 개악안 등 각종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하는 법안들을 철폐하라!
2. 정부와 자본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3. 정부는 국민들이 실업의 고통과 생존의 벼랑으로 몰린 절망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획기적인 사회안정망 확충방안을 제시하라!
4. 한진중공업은 고 김춘봉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라!
5. 한진중공업은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하라!
☞ 향후일정 ; 12/28 10:00 한진중공업지회 확대간부회의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지회 회의실)
12/28 18:00 2차 대책위 회의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지회 회의)
☞ 교섭요청 : 12/29 교섭요구 예정.
☞ 첨부자료
1. 고인의 사진 / 약력 / 유족
2. 경과
3. 유서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약력
1955년 3월 30일 경남 남해에서 출생
1967년 2월 부산남항초등학교 졸업
1970년 2월 부산남중학교 졸업
1980년 9월 8일 코리아타코마(주)
선각팀 조립반 입사(현 한진중공업)
1984년 11월 12일 회사 근무중 산업 재해를 당함
1985년 7월 29일 산업재해 후유증으로
현장직 근무부서에서 관리부서(자재담당)로 전근함
1992년 4월 4일 코리아타코마 조선 노동조합
제5대 부위원장 역임
2003년 4월 7일 회사구조조정에 따른 희망퇴직
2003년 5월 1일 촉탁계약(2003년 12월 31일 까지)
2004년 1월 1일 촉탁재계약(2004년 12월 31일까지)
2004년 12월 27일 아침 7시경 최초목격자에 의해 한진중공업 마산공장내 도장공장 계단난간에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이 발견됨.
고인의 유족
자 : 김지훈(24세)
녀 : 김지영(22세)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자결경과
1980. 9. 8 : 코리아타코마 입사(현 한진중공업)
2002. 6. 30 : 회사측의 구조조정으로 96명 퇴직(희망퇴직이라는 명분아래 47년, 48년, 49년생 전원 사직함, 겉으로는 희망퇴직 이라지만 그 내면엔 강요와 회유가 존재함)
2003. 3. 말경 : 또다시 10여명의 조합원 희망퇴직
2003년 3. 30 :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노·사간 회사이전에 따른 합의(마산공장 이전계획에따라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이전)
2003. 4. 7 : 고김춘봉씨 희망퇴직(유서에 따르면 회사측 김영수 관리부장, 이창형 관리차장이 수없이 퇴직을 권고하였고 마산공장 운영할때까지 계속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여 명퇴를 함)
2003. 5. 1 : 고김춘봉씨 촉탁계약(2003년 12월 31일까지, 고인의 근무장소는 사내 가스창고 관리 업무임)
고인은 마산공장 운영할때까지 계속근무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요구했으나 관리부장 및 관리차장은 회사규정상 문서로 정할 수는 없고 구두로 약속함
2003. 5. 22 : 마산공장 수리선 인원만 남기고 부산공장으로 이전함(약150명)
2004. 1. 1 : 고김춘봉씨 촉탁재계약함(2004년 12월 31일까지)
2004년 6월부터 사측은 가스창고 외주화계획을 추진하였으며 회사내 성광기업의 대표에게 고압가스 교육을 시킴(고인이 근무하는 가스창고는 고압가스 교육을 필참하여야 근무가 가능함)
2004년 11월 23일 회사와 면담을 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함
2004년 12월 7일 한진중공업 차해도 지회장이 마산공장장을 면담하여 원만한 해결을 촉구함
2004년 12월 이후 여러차례 회사측과 고인이 이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고인이 원하는 조건에 합의하는데 실패함.
2004년 12월 27일 07:00 한진중공업 마산공장내 도장공장입구 계단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됨
■ 목격자:옥00씨(청소용역업체 직원)
12월 27일 아침 07시경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 도장공장으로 가던 도중 목격
사망일시는 목격되기 전 약5시간 전으로 추정
■ 현재 마산 삼성병원에 안치중
■ 고인이 남긴 유서내용
(편집자 주 : 유서에 실명으로 표기되어있는 관련자 이름은 00으로 표기함)
24년간 이 회사를 위하여 몸과 청춘을 받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렇게 밖으로 쫒게나게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할수도 없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정말로 죽이고 싶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도 좋다 말인가.
그 당시 마산 및 부산, 울산 공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이 명퇴를 하였다.
타의든 자의든 생활권이 멀리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명퇴를 하고 또 나이가 많다고 명퇴시키고, 근무지가 편안하다고 명퇴를 시켰다.
나 역시 그 중 한사람이다.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 시달리며 명퇴권고를 받았다. 그 당시 관리부장 김OO, 노무차장 이OO 두사람이 나에게 수없이 권고하였다. 또한 그 당시 산재환자도 보상을 해주면서 일괄 정리하고 하였다.
나는 이곳 현장에서 작업 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하였다.
그 후 노동부로부터 9급이라는 산재등급을 받았다. 회사 노무팀에서 나에게 이러한 제안이 들어왔다. 산재보상보다는 명퇴를 하고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 때까지 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하였다.
나 역시 많은 생각끝에 촉탁근무로 하기로 하고 명퇴를 하였다.
그 후 2003년 5월 1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시까지 촉탁을 연장시켜준다는 문구가 없어서 아니된다고 하니 관리부장, 노무차장이 회사 규정상 그러한 문구를 삽입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면서 저희 두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서명을 권하기에 믿고 도장을 찍었다. 그 후 두사람은 회사공금을 착복하여 회사에서 해고당하였다. 그런데 지금와서 나가자니 하니 정말로 미치겠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올 6월부터 공장장 이OO, 시설차장 이OO, 관리 김OO 과장 등 관리팀에서는 외주(OO기업)를 주기로 구두계약을 하며 OO에서 고압가스 교육을 가도록 하였다.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11월 23일 면담을 해보니 모두가 끝난 상태였다.
회사는 자기 편한데로 또한 자기들하고 친하다고 이렇게 할 수 있냐.
한사람 가정이 파탄하는 줄 모르고....
그 후 공장장, 이OO, 김OO 등 많은 면담을 해 보았지만 안되었다. 절대 못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수차 이야기를 하여도 도와주지도 보지도 않았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어도 되는지 정말 회사는 너무하다.
현재 마산에서는 촉탁근무자가 나 외에 6명이 더 있다. 이들 역시 나처럼 나가라고 하겠지.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명퇴 촉탁을 하였다. 부탁도 하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계약 만료일만 되면은 쫒아내겠지.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 같은 사람도 인간 대접 받을 수 있지... 한진 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
차 지회장님, 그리고 권OO, 김OO, 이OO. 나의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꼭 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랍니다.
2004년 12월 26일
김 춘 봉
금속노조 /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 금속노조 경남지부 / 민주노총 부산본부 / 민주노총 경남본부
임시연락 : 부산 : 유장현(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선부장) 011-9238-8013
경남 : 박유호(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직부장) 016-585-9681
<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규직 확대를 즉각 중단하라!
끝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린 고 김춘봉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고 김춘봉 노동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고인은 1980년 코리아타코마(경남 마산시 양덕동 974-15)에 입사하여 1991년 한진중공업(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5가 29번지)이 인수한이후 지금까지 청춘을 바쳐 일해왔습니다.
고인은 2003년, 마산공장폐쇄와 부산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2003년 4월 회사 관리자로부터 끊임없이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 왔습니다. 결국 고인은 마산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한진중공업과 직접계약하는 촉탁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고인이 촉탁직 2년이 다 되어가자, 사전 논의도 없이 고인이 근무하던 가스관리파트를 완전히 외주용역하기로 하고 고인이 요구하였던 촉탁직 유지를 거부하였습니다.
촉탁직 유지의 희망조차 꺽여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고인은 2004년 12월 27일 아침 7시, 또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의해 도장공장입구 계단에서 목을 맨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노무현정권과 총자본의 끊임없는 비정규직 확대정책이 김춘봉 노동자를 죽였다고 규정합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03년 10월 분신 자결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 2004년 2월 "비정규직 차별철폐"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결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열사의 처절한 외침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과 자본가들은 절박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외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추구의 이해와 요구만을 받아들여 지금도 여전히 파견근로자들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각종 법률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노동현장내 차별을 심화시킬뿐 아니라 일하고 싶은 청년들을 평생 안정된 일자리 한번 가져보지 못하도록 비정규직만 확대, 양산하는 모든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합니다.
자본가들에게도 요구합니다.
노동자는 더 이상 기계나 소모품이 아닙니다. 실컷 부려먹고 필요 없으면 희망퇴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온갖 구실을 붙여 청춘을 바쳐온 일터에서 쫒아내는 노동자죽이기를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시직, 계약직, 촉탁직, 사내하청, 용역 등 온갖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정규직화해야 합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차해도)는 비정규직보호를 위해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이 체결한 2003년 조합통일요구를 근거로 한진중공업측에 지난 5월 27일 공문을 보내 촉탁직을 정규직화 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사측은 지금까지 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야기한 불행한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받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버려야하는 비참한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끝장내기 위해 온힘을 다하여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창한),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지부장 문영만),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지부장 허재우), 민주노총 부산본부(본부장 최용국), 민주노총 경남본부(본부장 이흥석)등이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노동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과 노동단체 등 제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
1. 노무현정부는 파견법개악안, 기간제(계약직) 개악안 등 각종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하는 법안들을 철폐하라!
2. 정부와 자본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3. 정부는 국민들이 실업의 고통과 생존의 벼랑으로 몰린 절망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획기적인 사회안정망 확충방안을 제시하라!
4. 한진중공업은 고 김춘봉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라!
5. 한진중공업은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하라!
☞ 향후일정 ; 12/28 10:00 한진중공업지회 확대간부회의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지회 회의실)
12/28 18:00 2차 대책위 회의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지회 회의)
☞ 교섭요청 : 12/29 교섭요구 예정.
☞ 첨부자료
1. 고인의 사진 / 약력 / 유족
2. 경과
3. 유서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약력
1955년 3월 30일 경남 남해에서 출생
1967년 2월 부산남항초등학교 졸업
1970년 2월 부산남중학교 졸업
1980년 9월 8일 코리아타코마(주)
선각팀 조립반 입사(현 한진중공업)
1984년 11월 12일 회사 근무중 산업 재해를 당함
1985년 7월 29일 산업재해 후유증으로
현장직 근무부서에서 관리부서(자재담당)로 전근함
1992년 4월 4일 코리아타코마 조선 노동조합
제5대 부위원장 역임
2003년 4월 7일 회사구조조정에 따른 희망퇴직
2003년 5월 1일 촉탁계약(2003년 12월 31일 까지)
2004년 1월 1일 촉탁재계약(2004년 12월 31일까지)
2004년 12월 27일 아침 7시경 최초목격자에 의해 한진중공업 마산공장내 도장공장 계단난간에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이 발견됨.
고인의 유족
자 : 김지훈(24세)
녀 : 김지영(22세)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자결경과
1980. 9. 8 : 코리아타코마 입사(현 한진중공업)
2002. 6. 30 : 회사측의 구조조정으로 96명 퇴직(희망퇴직이라는 명분아래 47년, 48년, 49년생 전원 사직함, 겉으로는 희망퇴직 이라지만 그 내면엔 강요와 회유가 존재함)
2003. 3. 말경 : 또다시 10여명의 조합원 희망퇴직
2003년 3. 30 :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노·사간 회사이전에 따른 합의(마산공장 이전계획에따라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이전)
2003. 4. 7 : 고김춘봉씨 희망퇴직(유서에 따르면 회사측 김영수 관리부장, 이창형 관리차장이 수없이 퇴직을 권고하였고 마산공장 운영할때까지 계속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여 명퇴를 함)
2003. 5. 1 : 고김춘봉씨 촉탁계약(2003년 12월 31일까지, 고인의 근무장소는 사내 가스창고 관리 업무임)
고인은 마산공장 운영할때까지 계속근무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요구했으나 관리부장 및 관리차장은 회사규정상 문서로 정할 수는 없고 구두로 약속함
2003. 5. 22 : 마산공장 수리선 인원만 남기고 부산공장으로 이전함(약150명)
2004. 1. 1 : 고김춘봉씨 촉탁재계약함(2004년 12월 31일까지)
2004년 6월부터 사측은 가스창고 외주화계획을 추진하였으며 회사내 성광기업의 대표에게 고압가스 교육을 시킴(고인이 근무하는 가스창고는 고압가스 교육을 필참하여야 근무가 가능함)
2004년 11월 23일 회사와 면담을 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함
2004년 12월 7일 한진중공업 차해도 지회장이 마산공장장을 면담하여 원만한 해결을 촉구함
2004년 12월 이후 여러차례 회사측과 고인이 이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고인이 원하는 조건에 합의하는데 실패함.
2004년 12월 27일 07:00 한진중공업 마산공장내 도장공장입구 계단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됨
■ 목격자:옥00씨(청소용역업체 직원)
12월 27일 아침 07시경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 도장공장으로 가던 도중 목격
사망일시는 목격되기 전 약5시간 전으로 추정
■ 현재 마산 삼성병원에 안치중
■ 고인이 남긴 유서내용
(편집자 주 : 유서에 실명으로 표기되어있는 관련자 이름은 00으로 표기함)
24년간 이 회사를 위하여 몸과 청춘을 받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렇게 밖으로 쫒게나게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할수도 없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정말로 죽이고 싶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도 좋다 말인가.
그 당시 마산 및 부산, 울산 공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이 명퇴를 하였다.
타의든 자의든 생활권이 멀리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명퇴를 하고 또 나이가 많다고 명퇴시키고, 근무지가 편안하다고 명퇴를 시켰다.
나 역시 그 중 한사람이다.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 시달리며 명퇴권고를 받았다. 그 당시 관리부장 김OO, 노무차장 이OO 두사람이 나에게 수없이 권고하였다. 또한 그 당시 산재환자도 보상을 해주면서 일괄 정리하고 하였다.
나는 이곳 현장에서 작업 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하였다.
그 후 노동부로부터 9급이라는 산재등급을 받았다. 회사 노무팀에서 나에게 이러한 제안이 들어왔다. 산재보상보다는 명퇴를 하고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 때까지 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하였다.
나 역시 많은 생각끝에 촉탁근무로 하기로 하고 명퇴를 하였다.
그 후 2003년 5월 1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시까지 촉탁을 연장시켜준다는 문구가 없어서 아니된다고 하니 관리부장, 노무차장이 회사 규정상 그러한 문구를 삽입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면서 저희 두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서명을 권하기에 믿고 도장을 찍었다. 그 후 두사람은 회사공금을 착복하여 회사에서 해고당하였다. 그런데 지금와서 나가자니 하니 정말로 미치겠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올 6월부터 공장장 이OO, 시설차장 이OO, 관리 김OO 과장 등 관리팀에서는 외주(OO기업)를 주기로 구두계약을 하며 OO에서 고압가스 교육을 가도록 하였다.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11월 23일 면담을 해보니 모두가 끝난 상태였다.
회사는 자기 편한데로 또한 자기들하고 친하다고 이렇게 할 수 있냐.
한사람 가정이 파탄하는 줄 모르고....
그 후 공장장, 이OO, 김OO 등 많은 면담을 해 보았지만 안되었다. 절대 못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수차 이야기를 하여도 도와주지도 보지도 않았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어도 되는지 정말 회사는 너무하다.
현재 마산에서는 촉탁근무자가 나 외에 6명이 더 있다. 이들 역시 나처럼 나가라고 하겠지.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명퇴 촉탁을 하였다. 부탁도 하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계약 만료일만 되면은 쫒아내겠지.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 같은 사람도 인간 대접 받을 수 있지... 한진 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
차 지회장님, 그리고 권OO, 김OO, 이OO. 나의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꼭 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랍니다.
2004년 12월 26일
김 춘 봉
첨부파일
-
회견1228.hwp (471.5K)
1회 다운로드 | DATE : 0000-00-00 00:00:00
- 이전글[소식]연맹 4기 임원선거 결과 04.12.28
- 다음글비정규직의 죽음 04.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