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우리 아이들이 당했지만 안전한 나라의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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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 창원을 찾다
2일 경남 창원에 세월호 사건 희생자 가족들이 찾아왔다. 비가 올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이었지만 가족들의 불편함을 들기 위해서인지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땅을 물들였다.
이날 창원을 찾은 학부모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세월호 가족 버스 전국순회'팀이다. 버스 전국순회는 이날 처음으로 실시하였으며 동부권과 서부권으로 나뉘어 진행한다. 그 중 동부권의 첫 출발지가 창원이었다. 이날 창원을 찾은 가족들은 단원고 2학년 7반의 희생자 학부모 22명이다. 2학년 7반은 23명의 학생 중 1명만 살아남은 반이다.
"창원시민들이 저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고 왔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전국순회팀은 경남도청에서 첫 출발을 알렸다. 세월호 학부모들의 발언은 간결했다. 도와달라는 호소였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4•16특별법을 제정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해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특별검사 제도 도입,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여러 법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호응도 폭발적이었다. 백만인 서명운동도 조직적으로 해야 겨우 될까말까 인데,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은 벌써 3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오늘로 전국 버스순회를 실시하며 서명운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죽은 이유조차 모르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출발을 알리고 서명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가 향한 곳은 'STX조선'이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서명운동을 한다는 계획이다. 진해 바다가 보이고, 배가 보였다.
"우리 아이도 저런 배에 탔어야 하는데…."
육중한 배와 바다가 보이자, 버스에서 한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다른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무거운 마음을 들기 위해 옆자리에 앉은 학부모와 통성명을 했다.
"국승현 아버지 국경호입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을 먼저 말했다. 국경호(48)씨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부모에게 성함을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아이의 이름을 먼저 말하고, 본인의 이름을 말했다. 아이가 잊혀 지지 않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었다.
국경호씨는 이날 새벽 5시에 안산에서 출발했다. 서명운동도 세월호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 열심히 한번 해 보겠다고 한다. 일반적 가정의 가장인 국경호씨를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은 '억울함'이었다. 국경호 씨는 세월호 사건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사고의 원인도 가르쳐주지 않고, 그래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정부가 무섭습니다."
국민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정부는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무서움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사고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를 밝혀내 처벌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부는 유병언 일가를 잡는데 만 주력하고 있다는 한탄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착하게 학교도 다니고, 수학여행 다니고 했는데…인양하는데 만 2년이 걸린다는데…"
아이가 죽었는데도 진상조차 밝히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움이 기자에게 전해졌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죽은 이유조차 모르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아이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 싶은 너무나 당연한 이유가 이뤄지지 않아서 1천만명 서명운동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버스 안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버스는 STX조선에 여지없이 도착했다.
"아이들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버스에서 내린 희생자 가족들은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지회의 도움을 받아 식당에서 서명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 총 4곳의 식당이 있지만 식당 공간의 이유로 서명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3곳이었다. 11명의 가족들은 3곳으로 나눠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저희는 세월호 엄마, 아빠들입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
서명운동에 돌입한 부모님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노동자들에게 호소했다. 한 어머니는 한 손에는 서명용지를 한 손에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기 위한 손수건을 들고 서명운동에 나섰다.
나강민군의 아빠 나병만(48)씨는 다른 학부모 가족들보다야 표정이 밝았다. 즐거워서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서명에 동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찡그리고, 울고 있으면 서명하러 오시는 분들이 부담을 느낍니다. 우리가 평상시 모습을 보여야 서명하시는 분들도 서명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많이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나병만씨와 같은 학부모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까. 식당 한 곳에서 5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세월호 서명에 동참했다. 최종적으로 3곳으로 나눈 서명운동은 1시간에 1천명을 넘어서는 결과를 남겼다. 물론 서명을 하지 않고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세월호 때문에 가게가 안된다며 서명운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서명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우리의 얼굴을 한번 보고 갈 때마다 자식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내 자식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들을 위한 서명인데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인데, 어머니들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남자들은 화장실이나 구석에서 많이 울고 돌아 옵니다"
"사고는 우리 아이들이 당했지만 안전한 나라의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은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만을 위한 서명운동이 아니다.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호소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 앞서 우리 학생들이 대형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최소한 어이없는 사고로 아이를 잃는 그러한 현실을 막아보자고 나선 것이다. 비록 내 자식은 죽었지만 또 다른 사고를 막아보자는 부모들의 마음이었다.
가족들은 생업도 포기하고 서명운동에 나섰다. 초기에 정부는 2개월 정도 생활지원금을 한달에 1백만원씩 지원해 줬지만 이제 그 마저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명운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들은 오는 3일 창원과 통영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주변에 길가다가 세월호 서명운동이 보이면 적극 동참해 주기를 호소한다.
"사고는 저희 애들이 당했지만 이번 서명운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은 물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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