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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노동자 솥발산에 지다-노조발-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47회 작성일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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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노동자 솥발산에 지다
염호석 열사를 보낸 이틀…굵은 빗줄기로 마지막 안녕
승리를 염원하며 정동진에서 해를 품었던 염호석 열사가 양산 솔밭산 안식처로 깃들었다.
 
‘염호석 노동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6월30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염호석 열사 영결식을 엄수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설립 350일, 염호석 열사 자결 45일 만이다.
 

 
지회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 정동진에 뿌려달라던 열사의 유언에 따라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금속노조 조합원 등 노동자와 연대단체 회원 1천여명이 삼성전자 본관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6월28일 삼성으로부터 임단협을 쟁취하고 휴식을 위해 지역으로 내려갔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도 전원 상경해 참석했다.
 
노조는 영결식에 앞서 9시 지회 조합원들과 발인제를 지내 열사의 약력을 낭독하고 편히 잠들기를 축원했다. 조합원들은 경찰이 탈취한 열사의 시신을 대신해 열사가 신던 신발과 양말, 옷, 사원증 등을 준비했다. 유골함이 비어 있었지만 열사의 유골을 정동진에 뿌렸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조합원들은 전 날 정동진의 모래를 가져와 따로 보관했다.
 
“삼성에 푸른 깃발을 꽂았다”

10시부터 시작한 영결식에서 전규석 위원장은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다던 염호석 열사는 자신을 노조에 바쳤다”며 “결국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삼성재벌의 땅에 금속노조의 푸른 깃발을 꽂고 임단협을 쟁취했다”고 조사를 낭독했다.
 
전 위원장은 “염호석 열사는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이라고 했다”며 “진정한 승리를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뿐만 아닌 모든 금속노동자를 금속노조 깃발 아래로 모으는 날까지 진군하겠다. 열사께서 목숨 바쳐 지킨 노조 남은 우리가 투쟁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염호석 열사의 생모인 김정순 여사는 “이렇게 건강하게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며 열사의 동료들에게 유족 인사를 건넸다. 김 여사는 “나는 죄인이다. 그리웠던 아들을 이제 영원히 가슴에 묻게 됐다”라며 “마지막 가는 길 아들을 안아보고 싶었지만 저들이 막았다. 경찰이 왜 아들의 시신을 탈취 했는지, 정말 이 나라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김 여사는 끝으로 “우리 호석이 마지막 가는 길 훨훨 날아가게 도와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호상인사에 나선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호석이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문했고 우리는 해냈다. 76년 무노조 삼성에서 첫 임단협을 쟁취했다”고 평가하며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철저히 무너뜨릴 때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조합원들은 영결식을 마치고 열사의 영정을 따라 삼성전자 본관을 한 바퀴 돌며 행진했다. 열사의 영정 사진 뒤에는 열사의 유품과 ‘무노조 끝장났다’, ‘호석아 이겼다’, ‘삼성을 바꾸자’ 등의 글귀가 적힌 검은 만장을 든 조합원들이 뒤따랐다. 행진을 마친 조합원들은 삼성전자 본관을 향해 “노조탄압 하지마라”, “노동자를 사람답게 대접하라”고 구호와 함성을 외친 후 정동진으로 출발했다.
 
“호석아, 호석아. 아……”
상경투쟁 기간 동안 승리하면 정동진으로 달려가 염호석 열사에게 큰 소리로 보고할 것이라 입을 모았던 조합원들은 16시30분 무렵 시작한 정동진 노제에 침통한 표정으로 말없이 참석했다.
 
열사와 함께 근무하던 양산분회 조합원들은 술과 절을 올렸다. 김기호 동래 분회장은 “힘들고 두려울 때도 많았다. 현우, 종범, 호석이를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우리를 한데 묶어줘서 고맙다”며 “잘 가라. 우리가 민주노조를 지킬 것”이라며 축문을 낭독했다.
 
조합원들은 정동진 바닷가에서 준비한 소지를 불태웠다. 아쉬운 마음에 불붙은 종이를 놓지 않고 끝까지 움켜쥔 조합원도 있었다. 열사와 친형제 같이 가까웠던 염태원 양산분회 대의원은 전날 가져온 정동진의 모래를 바다로 다시 뿌리며 오열했다. 조합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거나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담배를 태우며 슬픔을 달랬다.
 
30일 밤늦게 열사가 근무하던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 도착한 8백여명의 조합원들은 1일 아침 9시 무렵 시작한 노제에 참석했다.
 
문영만 부산양산지부장은 “염호석 열사가 4시간 거리를 45일만에야 도착했지만 푸른 파도가 돼서 임단협을 쟁취해 돌아왔다”며 “열사가 지키고자 한 민주노조로 단결하고 노동자가 잘 사는 날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 나서자”고 주문했다.
 
열사의 절친한 동료 염태원 대의원은 “투쟁승리 전까지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수많은 동료들이 호석이 유지를 받들어 승리를 거뒀다”며 “영결식과 노제를 치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동료들과 함께 불러보고 싶다. 호석아 사랑한다. 좋은 곳 가거라”라고 외쳤다.
 
조합원들은 ‘더 이상 슬픔은 없다’, ‘지회가 승리했다’, ‘보고 싶다’ 등 10미터 길이 흰 천에 빈 공간 없이 까맣게 염호석 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유골함에 담았다. 열사의 영정과 유품을 들고 양산서비스센터 사무실과 수리실을 돌아 나온 조합원들은 양산종합운동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경찰이 빼앗아간 시신 대신 유품 매장
조합원들은 1일 12시30분 무렵 솥발산 묘역에서 열사를 안장하는 하관식을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묘소 바로 옆에 마련한 염호석 열사 묘소에 열사의 유골이 섞여 있을 정동진의 흙과 물, 동지들의 작별인사가 들어간 함을 매장하고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깃발과 민주노총 깃발로 덮었다.
 
염호석 열사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남문우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열사는 단호했고 임단협 승리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스스로 빛이 됐다”라며 “열사의 지상명령에 따라 폭우와 무더위를 이기며 달려온 지회 동지들을 열사도 자랑스레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열사의 어머니도 어렵게 입을 떼어 “그동안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봤다. 뭉치면 산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힘을 주고 앞으로 잘 살아가야 호석이도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격려했다.
 
평토제를 지내며 열사에게 절을 올릴 무렵 거센 소나기가 내렸다. 한 조합원은 “열사가 이제 한바탕 울고 떠나나 보다”라며 열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모든 장례절차를 마친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와 지회 임원들은 버스에 오르기 전 함께 고생한 모든 조합원과 한명씩 안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 노동자들의 머리위로 다시 구름사이로 해가 반짝였다. 염호석 열사는 45일 만에 완전한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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