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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김진숙의 꿈 위해 모인 금속노조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20회 작성일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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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의 복직 투쟁이 11월 18일로 149일을 맞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당장 복직한다 해도 정년까지 출근 일수는 채 한 달이 못된다. 지난 월요일 금속노조 부양지부는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18일(수) 오후 3시 한진중공업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는 한진중공업 앞 차로에서 진행했다. 체온을 재고 방명록을 작성한 후에야 대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회는 금속 노동자들의 결의 발언과 현대자동차 지부의 투쟁기금 전달식, 문선대의 공연 등으로 꾸몄다.

 

김진숙을 위한 자리에 김진숙은 없었다. 암이 재발했다. 지난주 13일 출근 선전을 하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출근 선전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14일부터는 출근 선전에 나오지 못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신과 같은 조선소 용접공인 27세의 여성 해고자 변주현 조합원(현대중공업 지부 사내하청지회)에게 편지글을 썼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편지를 대독한 정혜금 금속노조 부양지부 사무국장은 “복직 투쟁을 시작한 6월부터 매일 영도의 찬 바람을 맞으며 오전 6시 40분에 시작해 한 시간 가량 이어지는 출근 선전은 건강한 이들에게도 무리였다”라며 “암의 전이 여부를 검사했고 지금도 병원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양해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대회 끝자락,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희망배’가 대오 맨 끝에서 무대로 앞으로 나왔고 참가자들은 배 안에 ‘해고 없는 세상’이라 인쇄된 파란 풍선을 던져 넣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이 환히 웃고 있는 무대 앞에 잠시 머물던 희망배는 선수를 한진중공업 정문 쪽으로 돌려 퇴장했다.


대회사를 한 김용화 금속노조 수석 부위원장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1월 6일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을 투쟁해 동지들의 정리해고를 막았다. 우리가 다시금 민주노총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된 원동력이 됐다. 김지도에게 진 빚이 많다”라며 “민주화운동위원회의 복직 권고를 조 씨 일가는 거부했고 정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선업종노조연대 공동 의장이기도 한 조경근 현대중공업 지부장은 “수많은 불합리에 맞서 온몸이 부서져라 싸웠지만 정작 자신의 복직을 위해서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김진숙 동지를 위해 우리가 싸우자. 김진숙 동지가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도록 힘차게 싸우자”라고 호소했다.

심진호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영도에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온 것은 2011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감사드린다”라며 참가자들에게 인사한 뒤 “세상이 다 변했지만 김진숙 동지는 여전히 해고자인 채로 있다. 스물여섯 살에 쫓겨난 공장을 35년이 되도록 돌아가지 못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심 지회장은 “산전수전 공중전에 항암전까지 이긴 김진숙 동지가 다시 고통을 겪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 얼마나 복직이 하고 싶었으면 그 힘든 몸으로 새벽 출근 선전까지 했겠나”라며 “우리가 김진숙이 되겠다. 힘없는 노동자와 약자들을 위해 싸워 온 김진숙 동지에게 진 빚을 갚자. 모두가 김진숙이 되어 복직 투쟁에 나서자”라고 호소했다.

 

“현대중공업 서진 하청노동자 변주현 동지에게

 

주현씨, 안녕~

35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해고자로 만났다.

내가 26, 주연씨가 27. 조선소 용접공.

그래도 나는 허울뿐이었지만 정규직이었고, 산업역군이니, 조선소 기능인력이라는 칭송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부심과 부러움도 있었다.

35년의 세월을 건너 여성 용접공들은 전부 비정규직이 되고, 싼값에 쓰다가 가책 없이 버려지는 일회용품들이 됐다.

35년전엔 찍힌 사람들 소수가 징계 해고당했지만, 지금은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대우버스처럼 수백명이 짤리고 업체 하나가 폐업을 하는 건 붕어빵 리어카가 사라지는 일보다 쉽다.

아사히나 동희오토처럼 공장 전체가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수년을 거리에서 싸워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민주화가 완성됐다는 나라에서 세상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나라에서 오늘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미안해. 한스럽고.

우리는 종종 분열했고 계급의 이해관계에 투철하지 못했다.

35년간 나의 동지들은 늘 천막이나 길거리나 감옥이나 고공에 매달려 있거나 영안실 냉동고에 누워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노동자들은 19세기처럼 긴 시간을 일하다 죽는다.

물건을 나르다 죽고 기계에 끼어 죽고 족장이 무너져 추락사한다.

사람이 용광로에 빠져죽고 사지가 절단된 채 죽는 나라에서 병든건 아무일도 아닌지도 몰라.

민주노조를 함께 꿈꿨던 동지가 국가권력에 살해되고 크레인에서 죽어 내려오는 나라에선 살아있는게 오히려 미안하고 내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주현씨, 주현씨는 그렇게 살지마.

투쟁도 좋지만 맛있는거 많이 먹고, 따뜻한데서 자고, 영화도 보고,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살아.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도 하고.

아파서 중요한 투쟁앞에 할 일을 못하는건 너무 안타까운일이다.

주현씨는 건강하게 싸워라. 서진 투쟁에 함께 연대하지 못해서 미안해.

같은 꿈을 꾸는 동지야, 꼭 복직하길 바래.

 

한진지회 동지들. 변함없이 가열차게 싸워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심진호 집행부와 함께 복직투쟁을 하게 된 건 저의 큰 복입니다.

그리고 금속노조 동지들. 함께 싸워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동지들과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금속노동자로 당당하게 다시 뵙길 기다리겠습니다. 투쟁!“

김진숙 지도위원의 편지글 전문

 “‘주현씨 안녕’ 밝고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 봤습니다. 그곳에 흰 머리에 조금은 홀쭉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흘러 넘쳤습니다. 한국 최초 여성 용접사로서 수많은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서서 해고된 후 그 부당함에 맞서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 동지였습니다.

 

김진숙 동지의 스물여섯 청춘이 어느덧 머리에 서리가 내려 60대의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오신 김진숙 동지가 정년을 앞둔 지금 복직 투쟁을 재개하였습니다. 복직은 김진숙 동지 35년의 꿈과 희망이며 마지막 소원입니다. 꼭 복직하셔서 명예롭게 정년퇴직 하시고 아픈 몸 편히 쉬시며 치료에 전념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서진 노동자들도 현장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복직을 위한 투쟁 멈추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변주현 조합원의 편지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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