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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미루어 두었던
장례를 치르고 싶다
지난 8일 전국민주노동자 장으로 23년만에 장례를 치룬 노동해방 열사 정경식동지 어머님의 소원 이시다.
정경식 열사는 1984년 5월 9일 대우중공업(현 두산DST) 창원공장에 입사하여 1986년 노조 활동가를 만나 민주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7년 5월 대우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와 지부장 선거에서 정경식 열사는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활동하던 중 회사 후보를 지지하던 운동원과 시비가 붙는 폭행사건이 발생하였다.
1987년 6월 8일 정경식 열사는 폭행사건을 합의하기 위해 공장을 나선 이후 실종되었고 1988년 3월 2일 창원시 소재 불모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던 중 유골 상태로 발견되었다.
정경식 열사 행방불명으로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1988년 8월 19일 마산지검은 정경식 사건을 ‘자살’로 사건 종결 발표를 하였다.
회사는 유가협과 어머니를 업무방해 혐으로 고소를 해 김을선 어머니께서는 마산교도소에 구속 수감이 되기도 하였다.
어머니께서는 2000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하여 진실규명을 요구하였지만위원회에서는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하였다.
2010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는 정경식 열사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하였고 23년만에 전국민주노동자 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이 사건은 회사의 억압적인 노무관리와 국가기관의 탄압에 의하여 빚어진 사건이다. 회사는 국가 1급 방위산업체로서 국가기관이 상시적으로 통제, 관리하는 곳이다.
회사 내에서의 노동조합 활동도 국가 기관의 관찰 대상이었으며 노조의 일상 활동, 선거 및 파업 시기 등에는 집중적으로 노사 문제에 개입 하였는데 지부장 선거에서는 조직적으로 선거 결과를 왜곡시켰으며 이러한 회사의 지배개입과 부당노동행위는 민주노조 건설을 좌절 시켰다.
또 민주파 활동가들이 회사와 국가기관의 탄압사례를 수집하여 사용자에게 항의 하려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폭행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민주파에 대한 탄압의 계기로 삼으려 한 사건이었다.
유골이 발견된 뒤 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이 ‘자살’로 처리를 하여 사건의 은폐·조작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현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경식 열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살인자를 처벌하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열사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이 세상에 폭로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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