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조선소 일터를 살리자”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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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조선소 일터를 살리자” | ||||||||||||||||||||||||||||||
31일 신아에스비지회 등 8백 여 명 상경투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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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위원장 박상철)가 경남 통영 신아에스비 노동자들의 일터를 살리자며 주 채권단인 한국무역보험공사 앞에서 31일 오후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노조는 한국무역보험공사 담당자와 면담을 통해 선수금환급보증(RG : Refund Guarantee) 발행 등을 촉구했다. 하지만 공사는 6월 중에 현장 실사를 거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경남 통영시민을 대표해 집회에 참가한 정상기 ‘신아에스비 살리기 범시민대책위원회(아래 범대위)’ 부위원장은 “신아에스비는 60여 년간 통영시 지역 경제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다”며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채권단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채권단과의 면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자 신아에스비지회 임원들은 항의의 뜻으로 삭발식을 진행했다. 삭발식을 마친 김 지회장은 6월 4일까지 한국무역보험공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6월 4일은 건조의향서 체결의 후속 조치인 본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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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 하나라는 것 실감” | ||||||||||||||||||||||||
[사람들] 신아에스비 일터살리기 대장정 마친 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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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발바닥 곳곳에 생겼던 물집은 두꺼운 굳은살로 변했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리고 수염은 덥수룩해졌다. 5월 11일부터 30일까지 경남 통영에서 서울까지 오로지 두 다리에 의존해 걸어온 이들. 표정만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다. 국토대장정을 완주한 금속노조 신아에스비지회 국토대장정 ‘대원’들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힘겨운 대장정을 큰 탈 없이 완주했다는 자체로 기쁨이 우선 컸다. 30일 오후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서울 금속노조 사무실에 도착한 제진성 조합원은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았을 텐데, 대원들 모두 서로 배려하며 팀워크를 유지해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며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제 조합원은 이번 국토대장정 대장을 맡았다.
20일 동안 동행한 정경국 신아SB지회 부지회장도 “대원들 일반 조합원들인데 무급휴직을 내 돈 한 푼 안 받고 이번 투쟁에 나섰다”며 “자랑스러운 조합원들 덕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무급휴직 내고 국토대장정 나선 조합원들
이번 대장정에 나선 이들은 여섯 명. 수년간 같은 회사를 다녔지만 국토대장정에 나서기 전까진 서로 잘 모르던 사이였다. 20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힘겨운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평소 친한 사이여도 사소한 일에 갈등이 생기기 십상이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유가 뭘까.
“나만 살자고 하는 일이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여섯 명 어깨엔 조합원 6백 명과 가족들, 그리고 14만 통영시민의 염원이 실려 있었습니다. 항상 솔선수범하며 선배들에게 힘을 줬던 서른두 살 막내 정성남 조합원부터, 쉰네 살 나이에도 힘든 티 내지 않고 후배들 이끌어 준 안경식 조합원까지. 다들 큰 사명감을 갖고 대장정에 임했어요.” 제 조합원의 설명이다.
안경식 조합원은 “26년 일해 온 우리 일터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판인데 나이 좀 많다고 뒷짐만 질 수 있겠냐”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함께 나섰다”고 거들었다. 막내인 정 조합원은 목이 붓고 고름이 차 국토대장정을 마치자마자 병원에 가야했다. 정 조합원은 대장정 기간 몸이 많이 아팠음에도 다른 대원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새벽에 혼자 병원에 다녀왔다. 아파서 포기하겠다고 해도 다들 이해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목에 고름이 차도 포기하지 않아
그렇게 노동자의 일터 운명이 자기 발걸음에 달려 있다는 사명감 하나로 여섯 명이 똘똘 뭉쳤다. 이 과정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끈끈함도 생겼다. 고생길 끝에 얻은 소중한 성과물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표정이 밝은 또 하나의 이유다.
이들이 20일 동안 걷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경북 경주 발레오만도지회, 경북 구미 KEC지회, 충남 유성기업지회, 경기 평택 쌍용차지부 등을 방문해 다른 지역 노동자들과 농성도 같이 하고 선전전도 했다.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차려준 아침밥을 잊을 수 없어요. 사위가 처갓집 처음 갔을 때 장모가 차려주는 밥상 수준이었다니까요. 발레오만도 분들은 1급수에서 낚은 물고기로 어죽을 끓여줬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전국에 만난 동지들의 진심이 담긴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국토대장정 완주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김상원 조합원은 “20일 동안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경험이 많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제진성 조합원은 “내가 보기엔 답이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싸우는 다른 지역 분들을 보면서 충격받았다”고 말한다. 제 조합원은 지금껏 노조 간부 한 번 해 본적이 없다. 국토대장정을 출발할 때만해도 그저 자신의 일터 하나 살리는 문제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중소조선소 전반의 문제나 다른 지역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경험들
“금속노조가 하나의 노조라는 게 빈말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전국에서 투쟁하는 금속노동자들이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우리를 챙겨줘서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장담하건데 해병대 전우회도 금속노조만큼 끈끈하진 않을 겁니다.” 김종주 조합원은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금속노조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절감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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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에스비지회의 스무날 국토대장정 사연
경남 통영 신아SB는 한때 국내 8위, 세계 21위에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던 조선소였다. 하지만 SLS그룹이 2005년 조선소를 인수한 후 비리와 부실 경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비리로 구속되자, 선박 계약 취소가 잇따랐고 회사는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여기에 조선업 불황까지 겹쳐 4년 째 선박 수주마저 없다.
그런데 5월 초 희소식이 들렸다. 회사가 유럽 선주사와 중형 탱커 6척에 대한 건조의향서를 체결한 것.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채권단이 본 계약 체결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 신아에스비의 대주주는 지분 65%가량을 보유한 한국무역보험공사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이번 계약에 대해 선수금환급보증(RG : Refund Guarantee)을 발행하지 않고 있다.
조선업체는 선주로부터 선박제작대금의 50~70%를 선수금으로 받아야 생산에 들어갈 수 있다. 선수금환급보증은 조선업체가 선박을 제 시기에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물어주는 지급 보증이다. 금융회사가 이것을 발행해 주지 않으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경기 불황으로 선박을 수주하면 할수록 오히려 적자를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지회도 현실은 인정하지만 장기적인 일터의 발전을 고려하면 다소 적자를 감안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선박 수주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회는 특히 눈앞의 이익만 생각해 통영시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조선소를 망하도록 놔두는 것이 한국무역보험공사라는 공기업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아에스비지회는 이번 건조의향서마저 물 건너갈 경우 일터가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곳의 노동자들이 건조 중인 선박 두 척도 조만간 공정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이들에겐 시간이 없다. 어떻게는 6월 중으로 결판을 내야 하는 상황.
이번 국토대장정은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에 사회적 압박을 이끌어 내겠다며 일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한 투쟁이었다. 매일 30km 가량을 걸어야 하는 강행군임에도 신청자가 40명 넘어, 지회는 체력테스트까지 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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