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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금속노조와 2011년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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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위기가 이야기 된 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제 ‘위기’라는 말로는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위기’보다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벼랑 끝에서 떨어져 추락하는 도중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부딪혀 부서지기 전까지 “아직까지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금속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15만 산별노조 시대가 열린 지 4년, 금속노조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둘러싼 2010년 투쟁은 금속노조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애초부터 포기한 중앙교섭
“중앙교섭 타결 없이, 보충교섭 타결 없다”는 원칙은 2010년 투쟁에서 산산이 깨졌다. 그 결과 중앙교섭은 껍데기만 남았다. 이제 조합원 그 누구도 중앙교섭의 진행상황과 내용에 대해, 중앙교섭이 타결되든 안 되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원칙이 깨지고 전선이 무너진 이유는 타임오프 분쇄 투쟁을 중앙교섭 투쟁으로, 금속노조의 단일한 투쟁으로 만드는 것을 애초부터 포기했기 때문이다. 박유기 집행부는 중앙교섭을 통한 단일한 투쟁을 통해 타임오프를 분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각 사업장에서 알아서 투쟁하라고 결정했고, ‘7월 1일 법 시행’이라는 기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앙교섭 타결 이전에 보충교섭 타결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각자 알아서 투쟁한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일부 사업장에서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기로 구두 또는 이면합의 했지만, 많은 사업장에서는 타임오프를 받아들였다. 수당을 신설하고 조합비를 인상해 노동조합이 전임자 임금을 책임지는 기아차의 합의는 편법의 최대치, 그것도 조합원이 많은 대공장에서나 가능한 방법일 뿐이다.
결국 노동조합 활동을 자본의 허락 아래 두고 관리하려는 타임오프는 관철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 조직력이 약한 사업장, 중소사업장에서부터 먼저 타격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도 그 대표성이 흔들리고 있는 노동운동의 고립화, 소수화 과정이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사진=금속노동자 http://www.ilabor.org)
투쟁이 생략된 법 재개정 투쟁
어쨌든 타임오프 분쇄투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법 재개정 투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총파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총파업을 통한 법 재개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운동 지도부의 판단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이 말하는 ‘법 재개정 투쟁’은 정치권에 기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2011년 당장의 투쟁이 아니라, 2012년 예정된 정치일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2012년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보수야당과의 소위 ‘민주대연합’을 주장하는 특정 정파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2011년이 마지막 기회다
벼랑 끝에 선 금속노조는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가. 우선 지금까지 지도부가 보여준 현실적 판단, 차선책 찾기로는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9월 15일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공계진 정책연구원장은 “현재의 중앙교섭과 함께 부문별/업종별 교섭을 동시에 추진하는 소위 ‘투트랙 교섭구조’를 제안”했다. 15만이 함께하는 중앙교섭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이론적으로 맞지도 않으니(!) 현실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무기력한 금속노조의 모습으로 부문별/업종별 교섭을 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아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5만 금속노조를 강화하는 방법일까. 역시 아니다.
지금 금속노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15만의 단일한 요구를 걸고 15만의 단일한 투쟁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만큼 금속노조는 벼랑을 등지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15만 단일한 투쟁이 있어야 투트랙이든 쓰리트랙이든, 업종별 교섭이든 부문별 교섭이든 비로소 현실적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15만의 단일한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2011년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사진=민중언론 참세상 http://www.newscham.net)
2011년 무엇을 걸고 싸울 것인가
첫째, 2011년 투쟁의 맨 앞에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분쇄가 놓여야 한다. 2010년 그랬던 것처럼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역시 각 사업장에서 알아서 투쟁하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그나마 조직력 있는 대공장은 살아남고 조직력이 약한 중소사업장 노동조합부터 하나 둘 무너지게 만들 것인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분쇄하지 않는 한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래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분쇄는 중앙교섭 요구와 대정부 요구 모두의 맨 앞에 놓여야 한다.
둘째, 산별노조 법제화 요구를 걸고 싸우자. 지금까지 금속노조 중앙교섭 참석은 각 사업장이 알아서 투쟁해서 개별적으로 쟁취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대공장은 대공장대로 자본의 완강한 거부에, 중소사업장은 중소사업장대로 열악한 현실 때문에 조합원의 투쟁을 조직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산별노조 법제화 요구를 걸고 15만 조합원을 하나의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 개별 자본을 상대로 각각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15만이 함께 싸우자. 그 투쟁과 성과가 바탕이 되어야만 다양한 교섭구조에 대한 모색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인상하는 요구를 걸고 싸우자. 중앙교섭의 성과로 선전해온 금속산업 최저임금은 이제 생색내기일 뿐 그 의미를 상실했다.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봐야 법정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인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몇 년 전부터 그 중요성이 커진 법정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은, 이벤트성 1박2일 상경투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한계 때문에 투쟁과 분리된 회의실에서의 협상에 매년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금속산업 최저임금의 한계와 법정 최저임금 투쟁 현실적 한계 모두를 금속노조의 투쟁을 통해 돌파하자. 최저임금 인상을 걸고 금속노조가 전면적으로 투쟁한다면 최저임금 투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금속노조가 조직된 정규직 조합원을 넘어 미조직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과 전면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세 가지 요구 모두 “투쟁한다고 그게 가능할까” 생각될 정도로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차선책을 버리고 15만의 단일한 요구와 투쟁을 만들지 않는 한 답이 없다. 2011년 단일한 투쟁을 만들어야, 당장 100%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2012년, 2013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벼랑 끝에서 뒷걸음질 칠 곳은 허공밖에 없다.●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38호 (http://blog.daum.net/horura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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