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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과 민주노총의 역사적 운명
금년 하반기에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주요한 투쟁과제로 부상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니 투쟁하자’는 상투적 얘기가 아니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와 노동자의 공세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일대 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앞세워 직업안정법을 폐기하고 노동시장의 판도를 다시 한 번 바꿀 계획을 발표했다. 거대 직업소개소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임시직, 파견노동자를 사고파는 노동시장 수급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준비되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앞에서는 간접고용철폐를 요구하며 제정당노동사회단체 공동농성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전국순회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역량을 결집하여 10월 30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6천여 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모일 예정이다. 최근 몇년간 최대 규모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모이는 것이다.
문제는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라는 일회적 집회로 현 상황이 타개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비정규 현장투쟁이 대대적으로 터져 나와야 한다. 그런데 긴장된 정세에 비해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등 각급 산별노조들의 대중투쟁 계획은 미미하거나 없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간접고용철폐, 파견제폐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한
무기한 공동 농성 투쟁"에 함께하는 단체들의 문패 (사진=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비정규직 - 노동시장의 핵심부, 노동운동의 주변부
자본과 정권의 노동시장유연화 공세 결과 한국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 이원구조로 재편되었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층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착취의 주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층은 이제 더 이상 한국 노동시장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부가 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호조건은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여전히 주변부에 있다. 이것이 민주노총 운동의 딜레마이다. 지난 십수 년간 비정규직 확대를 위한 자본과 정권의 제도개악에 대해 대사업장 정규직을 주요 구성 부분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한 번도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개별 자본 차원의 대응에서도 주요 대사업장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투쟁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노조 지도부의 우경화된 지도노선 문제뿐만 아니라 조직노동자 대중의 우경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대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를 구성 주체로 하는 민주노총이 재편된 노동시장 구조 하에서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즉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대중적 요구와 투쟁으로 받아 안을 수 있는가?
민주노총의 혁신은 가능한가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5년간의 신자유주의 공세의 가장 일차적 공격목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초기에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투쟁을 중심으로 그 공격을 막아 내기를 원했고, 투쟁에 나섰다(97년 노개투 총파업 등). 그러나 거세게 몰아붙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 앞에서 노조 지도부가 먼저 무너지면서 투쟁이 실패하자 대중은 차츰 다른 방식의 생존전략을 찾아 나섰다. 먼저 가장 허약한 부분이 노조를 떠나 사측에 투항하여 살아남고자 했다. 그 다음이 투쟁을 포기하고 임금과 노동강도에서 후퇴하면서 고용을 보장받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생존전략을 택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만약 민주노총의 주요 구성원인 대사업장 정규직 조합원들의 우경화 정도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면 민주노조운동 혁신은 무망한 일이다. 냉철하게 말하면 1500만 노동대중 중에서 불과 70-80만 명에 불과하므로 그다지 연연해야 할 규모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노동운동의 대표적 대중조직은 새롭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경로가 어떠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현 민주노총의 역할이 무엇이냐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혁명적’ 방식이냐, 민주노총의 변화에 의한 연착륙이냐? 두 가지 길에서 가장 중요하고 공통적인 것은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새로운 주체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투쟁으로 나서는 경로를 전망해 봐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현재의 민주노총의 지원연대에 힘입어 투쟁하고 조직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외형상 매우 완만하고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대투쟁 방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할 것이다.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
민주노총의 역사적 운명은?
2010년 하반기 비정규투쟁은 노조조직이나 활동가조직이나 모두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가능성을 여느냐, 자신의 운동적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으로 퇴장하느냐를 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11년 7월 1일부터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복수노조가 시행된다. 그간의 산별노조운동은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기업별노조 연합체에서 한발도 못나가고 있고, 금속노조는 대공장의 기업별 노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회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는 산별노조의 교섭구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십수년간 추진해 온 산별노조는 일거에 해체될 수도 있다. 이제 산별노조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는 조직은 산별노조가 아니다.” 산별노조의 기준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복수노조 체제가 곧바로 급격한 노조운동 지형변화를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운동의 한계가 심화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이 확대되면 복수노조체제는 노조운동의 지형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폭발적 투쟁이 터지기 전이라도 복수노조체제는 민주노총 울타리를 넘어선 새로운 조직을 형성하게 할 것이다. 이 경우 과도기적으로 민주노총 울타리라는 외피 하에서 내부적으로는 계층적 기반과 지향을 달리하는 노조들이 다양한 형식의 연합체를 형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2-13년의 직선제는 민주노총 조합원 대중이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우경화되었느냐, 새로운 주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는 곧 민주노총의 역사적 운명을 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 측의 분할지배 전략은 언제나 있었다. 지난 시기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의 분할지배는 지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지배와 비슷했다. 숙련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 노조조직의 운명은 다양했다. 미숙련노동자들과 손잡고 계급적 연대를 한 경우도 있지만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 과정에서 반동화되어 역사의 뒤안으로 퇴장한 경우도 많다.
민주노총의 앞날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아직 우리 하기에 달렸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 김태연 (노동전선 집행위원장)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39호 ( http://blog.daum.net/horurag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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