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24일째를 맞은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농성장이 식량과 추위, 단전으로 본격적인 고통 속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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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낭이나 이불 하나 변변치 않은 농성장. 한 조합원이 라면 박스 등으로 이불을 만들었다. |
일단 8일엔 밥이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비정규직지회는 식사가 완전히 차단됐을 때를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초코파이 2개를 저녁식사로 배급했다. 이미 농성장은 일주일 전부터 하루 한 끼 정규직 노조가 넣어주는 김밥 한 줄로 연명해 왔다. 이날은 이마저도 안 올라온 것이다.
농성장은 근 2주 전부터는 두 끼가 나와도 한 끼는 초코파이나 컵라면 등이 나와 농성조합원들 영양 상태는 최악이다. 지난 주엔 한 조합원이 화장실 옆 벽에 붙은 선전물을 보다 갑자기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다. 또 많은 조합원들이 장기간 김밥이나 라면 등만 먹어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4공장(32세)의 한 조합원은 “평생 빈혈기라고는 없었는데 몇일 전부터 앉았다 일어나면 머리가 팽 도는 빈혈기를 보인다”고 호소했다.
상당수 조합원들은 이렇게 한 끼 밖에 안 나오던 밥마저 중단된 것을 두고 정규직 노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1공장의 한 조합원(31)은 “지부가 얼마 전까지 아름다운 연대를 얘기하면서 밥을 넣어 줄 때마다 생색을 내더니 이젠 지부 의견대로 우리가 따라주지 않자 그마저 끊은 것 같다. 회사가 아무리 막아도 현대차지부가 밥을 못 넣겠느냐”며 “어차피 지부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지부가 당장 식사를 안주고 굶더라도 지부가 확대운영위에서 결정한 선 농성해제는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조합원들이 먹는 절대량이 줄어들자 처음엔 줄어들지 않던 화장실 대변 줄은 아침에도 아예 없어졌다. 먹는 게 없어서 며칠씩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4공장의 한 조합원(40)은 “허리가 32인데 바지가 너무 헐렁해져 허리띠를 안 하면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 간다”고 너스레를 떨고 “너무 먹는 게 없어서 저는 13일 동안 화장실을 안 갔지만 제 옆의 동료는 19일간 화장실에 안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은 “여기 농성에 들어오기 전날 다른 지방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오다 국밥을 먹었는데 그 국밥이 눈에 선하다”며 침을 삼키기도 했다.
굶주림도 굶주림이지만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난 7일 절기상 대설이 지나면서 강도 높게 엄습해 온 추위다. 농성장은 점거 이틀째까지만 해도 온풍기가 돌아갔다. 그러나 3일째 부턴 어떤 난방 장치도 없다.
비정규직지회가 어렵사리 구한 침낭이 반입되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은 비닐과 은박매트에만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국 조합원들은 종일 뼈를 시리게 하는 추위에 떨면서 농성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포크레인이 깨고 지나간 유리창에서 들어오는 칼바람이 부는데다 해가 뜨기 직전인 아침 6~7시엔 너무 추워, 잠이 깨서 자리에 앉아 벌벌 떠는 조합원들이 부지기수다. 농성장은 아침 9시께가 돼서야 추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배고픔과 추위만큼 조합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단전이다. 10여일부터 간간이 되던 단전은 5일 전부터는 하루 중 2/3 이상 전기가 안 들어오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전기가 안 들어오면 오후 5시만 돼도 공장 안은 어두컴컴해져 ‘지금이 밤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특히 공장 자체가 애초 창가 주위를 빼고는 전체적으로 어두워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곳이라 단전 상태가 되면 공장은 묘한 적막감이 빠져든다. 칠흑 같은 어둠과 적막감 속에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몇몇 조합원들의 이탈도 눈에 띄지만 대다수 조합원들은 회사 쪽에 더 강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한 1공장 조합원(33)은 “살인자들도 감옥에 가면 밥 세끼를 먹여 주는데 우리는 살인자들 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우리가 이런 정도에 농성을 접을 거면 애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분개했다.(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