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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의 꿈, 인간의 꿈, 우리들의 꿈
나는 생전에 그를 본 적이 없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영정 사진 속의 크고 퀭한 눈망울과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로 시작해서 “미안합니다”로 끝나는 유서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 눈망울은, 유서는, 숯검정이 되어 시멘트 바닥에 오그러 붙은 그의 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같이 투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의 이름으로 기꺼이 함께한 소중한 투쟁이었다.
(사진=오마이뉴스)
노동조합이 가져다 준 인간의 꿈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두산의 악랄한 노조탄압에 항거한지 8년 만에 그의 삶을 갈무리한 책이 나왔다. <인간의 꿈-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평전>(김순천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그래서 우리는 이제 커다란 눈망울과 유서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53년생으로 70∼80년대를 거쳐 온 노동자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평범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때 사랑의 아픔도 겪었고,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그는 다들 인정하는 솜씨 좋은 스카핑 기술자였다. 그는 궂은일도 마다않고 솔선수범하면서도 자리욕심이나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기술이 조금 부족했거나 덜 솔선수범했던 사람이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영웅담이 아니니까.
정작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든 건 ‘노동조합’과의 만남이었다. 1981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민주노조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노동자들의 거대한 분출이 현장을 바꿔내는 감격을 맛보았다. 그 감격이 그에게 노예가 아닌 ‘인간의 꿈’을 꿀 수 있게 했다.
악랄한 두산, 지울 수 없는
<인간의 꿈>은 노동자 배달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그의 삶을 모아 기록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과제였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도 없지 않다. 책이 출간되기 전 A4용지에 인쇄된 원고를 먼저 보았을 때, 우리가 기억하고 갈무리한 그의 삶의 모습이 풍성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함께 실린 사진들이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어 다행스럽다. 글자가 전하는 것 못지않게 사진들은 그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해준다.
한편, <인간의 꿈>은 배달호 열사의 삶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악랄한 두산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인후 이후 저지른 온갖 불법과 만행들은 이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혹 시간이 흘러 두산자본을 규탄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모를지라도 악랄한 두산에 대한 기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배달호가 꾼 꿈, 우리들이 꾸는 꿈
배달호가 꾸었던 인간의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꾸고 있는 우리들의 꿈이다. 책의 끝부분에는 열사의 장례식 때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김진숙 동지의 추도사 "호루라기 사나이, 그를 아십니까"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배달호 열사의 8추기 추모제가 열리던 날 새벽, 김진숙 동지는 한진중공업의 악랄한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바로 그’ 85호 크레인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들의 꿈은 모질게 계속 되고 있다. <인간의 꿈>을 양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며, 이 밤 35m 크레인 위에서 꾸는 꿈을 같이 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44호 http://blog.jinbo.net/horuragee
(사진=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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