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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고공농성과 ‘1만명 비정규직 선언’
지난 3월 7일 새벽 2시,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플랭카드와 밧줄, 신나와 확성기를 둘러매고” 대우조선 남문 옆 고압송전탑에 올랐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하노위) 의장 강병재 동지. 비정규직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활동하다 해고되어 2년 넘게 투쟁해 온 그는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남긴 글에서 “노동자의 삶이 자본의 이윤보다 소중하다”고 외쳤다.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고공농성
그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곳은 154,000볼트 고전압이 흐르는 45m 송전탑의 20m 지점이다. 자칫하면 감전될 지도 모를 위험한 철골 사이 비좁은 안전발판 위에서, 바람을 막을 비닐막 하나 없이, 그는 몸뚱이 하나로 저항하고 있다. 침낭과 안전띠 하나에 의지한 채 지새운 밤이 벌써 2주째, 지난 주말엔 비까지 내렸지만 그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굳건히 농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폐업한 협력업체와의 문제일 뿐이라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송전탑 아래 천막을 치고 농성 유지와 관련된 모든 지원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농성을 지원하고 회사와의 협상을 중재하는 역할을 넘어서 현장을 조직하거나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실천투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자칫 위태로운 고공농성이 장기화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3월 22일 저녁 6시 고공농성 이후 첫 결의대회를 농성현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 결의대회가 고공농성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연대투쟁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만명 비정규직노동자 선언
고공농성이 시작되자 대우조선 정규직 현장조직들도 제각기 선전물을 통해 투쟁에 함께할 것을 호소했다. 이 중 ‘현장중심의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현민투)가 제안하고 추진 중인 “2만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1만명 비정규직노동자 선언”이 주목된다.
‘현민투’는 3월 9일 ▲성과배분 직영-하청 동일지급 ▲중식 전 중회 퇴근 전 석회 등 현장통제 중단 ▲하청 폐업시 고용승계 ▲고공농성 해결 위해 대우조선 사장이 교섭에 나설 것 등 4가지 요구가 담긴 선언문을 배포하고 인터넷 카페와 휴대폰 문자를 통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참여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 같은 제안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다. 휴대폰 문자가 폭주하여 문자를 받는 담당자를 1명에서 3명으로 늘려야 할 정도였다. 그동안 억눌렸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규직 현장활동가들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소통의 고리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선언에서 행동으로
자본의 일상적인 탄압과 극심한 현장통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선언에 참여한다는 휴대폰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나 휴대폰 문자 하나가 곧바로 노동현장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역시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현민투’는 선언에 동참 한다는 문자를 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생각을 확인하는 것부터,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믿음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100명 이상의 초동주체가 형성되면 그들이 중심이 되어 비정규직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휴대폰 문자로 참여한 선언이기에 당분간은 대부분의 활동이 휴대폰 문자를 통해 소통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휴대폰 문자가 작은 행동으로, 그리고 다시 집단적인 행동으로, 마침내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현민투’가 추진하고 있는 ‘1만명 비정규직 선언’의 결과를 주목해 본다.
그리고 홀로 외로이 고압송전탑에 오른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짓이 현장활동가들의 실천과 만나고, 마침내는 억눌려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과 하나 되어 터져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47호 (2011년 3월 21일 발행) : http://blog.jinbo.net/horuragee
* 대우조선 비정규직노동자모임 인터넷 카페 : http://cafe.daum.net/gkcjdshehdwk
고공철탑에 오르며
-2011년 3월 7일 새벽2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의장 강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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