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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약속 끝내 지키셨군요(오마이뉴스)
작성자 콜트빨간모자
댓글 0건 조회 2,536회 작성일 2011-09-03

본문

"평생 노동자 위해 살겠다"는
아들과의 약속 끝내 지키셨군요.
[추도사] 이소선 어머니 영전에 바칩니다
11.09.03 19:56 ㅣ최종 업데이트 11.09.03 20:22  민종덕 (minjd2000)  

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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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고인이 연설하는 모습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권우성  이소선

아,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이 땅의 억압 받고 천대 받는 모든 이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시여! 이대로 가시렵니까?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도 힘없고 소외된 자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이 시간에도 아름다운 이 땅을 군사기지화 하려는 세력들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분노에 산천이 흐느끼고 있는데…

어머니, 어디로 가십니까?

힘없고 가난한 이들 감싸는 커다란 산이고 따스한 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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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이소선(사진 가운데)  
ⓒ 전태일재단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늘 어둡고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최선봉장이셨습니다. 폭력과 기만에 찬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지금까지 숨을 거두시기 직전까지 살아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천만 노동자는 물론 힘없고 빽없는 가난한 서민들을 감싸는 커다란 산이셨고, 따스한 볕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께서 홀연히 가신다면 남은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까? 누구한테 길을 묻고 방향을 잡아야 합니까?

어머니 보이지 않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세력은 또다시 공안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미친 역사를 돌파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누구한테 얻어야 합니까?

참으로 암담하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동시에 이 마당에서도 어머니께 이런 호소를 해야 하는 우리의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께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가난과 불평등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보내드려야 한다니요. 어머니 우리를 마음껏 꾸짖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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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 가족사진 (맨 왼쪽이 이소선, 가운데 어린이가 전태일).  
ⓒ 전태일재단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오직 아들 전태일 동지의 마지막 유언인 "어머니 내가 이루지 못한 뜻 어머니께서 꼭 이루어 주십시오.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어머니는 꿋꿋이 이겨내셔야 합니다. 약속하십시오"라는 당부에 약속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오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그 모질고 험한 세월 아들과의 약속을 꺾지 않으시고 살아오셨습니다.

아들 전태일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결성한 청계피복노조를 통해 1970년대 척박한 노동운동 현실에서 민주노조를 지켜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우리의 선봉에 서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하에서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지키고, 노동자의 권익쟁취에 온몸을 던지셨습니다.

어머니! 그때 그 현장이 생생합니다. 기동경찰대의 곤봉세례를 뚫고 어머니의 불같은 호령으로 일갈하여 물리치시던 그 목소리가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동부경찰서에서, 때로는 북부지방법원 법정에서, 때로는 노동청 청사 한가운데에서 어머니와 함께 싸우면서 얻어맞아, 끌려가고 그러다가 구류 살고, 징역 살고 그렇지만 끝내는 싸워서 이겨 승리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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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무덤 앞에 선 어머니 이소선  
ⓒ 오도엽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1970, 1980년대 노동운동이 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단순히 노동자의 권익쟁취만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쟁취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지 않으면, 한낱 사탕발림이나 구호에 그친다는 인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광적인 독재정권하에서 온갖 탄압에 맞서 서슴없이 나서서 싸우셨습니다.

그 중 민청학련사건 때 학생들과 재야인사를 도피시켜서 그들의 안전과 목숨을 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인혁당사건 때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인사들의 시신을 탈취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구보다도 용기 있게 앞장서서 싸우셔서 유가족과 재야인사들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어머니께서는 구속자 가족을 비롯해 많은 재야민주인사들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불의와 맞서 싸울 때는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기백과 용기에 간담이 서늘해진 독재권력은 끝내 1977년 구속을 시켰습니다. 어머니를 구속시킨 유신독재는 망하고 이 땅에 민주화의 물결이 잠깐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또다시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해 철권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청계피복노조를 강제해산시키고 어머니를 두 번이나 구속시켰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 상황에서도 어머니와 우리는 결코 굴하지 않고 폭력으로 강제 해산당한 노조를 복구해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지켜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떠한 시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아들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당당하게 지켜오셨습니다. 폭력과 기만에만 의존하는 독재자들의 그 어떤 폭압에도 어머니의 그 명석한 지혜를 이길 수 없고, 어머니의 그 불굴의 의지를 꺾을 수 없고, 어머니의 그 단호한 용기를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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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전국노동자대회

사랑하는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와 함께 목청껏 부르던 "우리 승리 하리라"를 이제는 누구와 불러야 합니까? 어머니와 함께 무릎 끓고 올리던 기도를 누구와 함께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라"고 두 손을 모아야 합니까? 어머니와 함께 갔던 동구릉, 서오릉, 금곡릉 등 그 많은 야유회 장소를 누구와 함께 가야 합니까? 어머니와 함께 갔던 영주강, 하일동, 한탄강은 또 누구와 가야 합니까?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1977년도 경찰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노동교실, 1984년도 신당동 노조사무실, 1987년도 청계7가 노조사무실, 창신동 기념관 이런 사무실을 경찰에 의해 강탈당하고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집기를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했던 우리입니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절망하면서도 서로 위로했던 그 정을 이제 누구와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는 추억으로 간직해야 합니까?

어머니 위대하신 어머니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대회를 할 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불의에 사자후를 토하시던 그 목소리는 이제 또 언제 어디서 들어야 합니까?

그립고 사랑하는 어머니!

언제 한번 우리들이 사랑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두들겨 맞*, 끌려가고, 울부짖고,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노래하고, 외치던 그 장소에 가서 지치도록 해방춤을 추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시렵니까?

어머니, 영원히 함께해 주실 거죠...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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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 및 전태일 기념상 제막식이 열린 2005년 9월 30일 오후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버들다리)에서 고 이소선 여사가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고귀한 뜻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2006년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다 전태일 거리 다리를 만들었지요. 그것은 전태일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이 땅의 노동자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희생을 바쳤는가를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자리에 어머니께서 영원히 함께해 주실 거죠? 저희들도 어머니가 그리우면 늘 이 자리에 와서 어머니를 뵈올 작정입니다.

어머니 아들과의 약속이 사사로운 약속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는 위대한 약속이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신 멋지고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어머니. 어머니와 한 생애를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제 모든 것 남은 자들한테 맡기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당당하게 아들 전태일을 만나서 "인간 차별"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고, 억울하고 소외된 자도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평안함을 누리소서. 늘 꿈에서 만나던 전태일을 이제는 얼싸안고 만나서 "약속"을 지켰노라고 떳떳하게 얘기하소서. 여기는 우리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그 약속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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