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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의 환등상자 <꿈의 공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상품의 기원을 의도적으로 망각한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입고 있는 옷이, 살고 있는 집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내 눈앞에 도착했는지를 일일이 따져 물으며 소비의 쾌감을 만끽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 자체로 투명하고 중립적인 상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품은 언제나 노동의 다른 말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이란 노동자의 희생과 착취의 다른 말일 때가 많다. 그러므로 소비자로서 우리는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실은,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모 브랜드의 신발을 사고,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다국적 기업의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제3세계의 노동 또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상품을 사는 것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매 순간 의식하며 행동한다는 건 얼마나 피곤하고 어려운 일인가. 몰라서 산다는 ‘무지’와 알면서도 살 수밖에 없다는 ‘냉소’의 길 외에, 우리의 욕망을 거세하거나 부정하지 않고서도 차선의 소비자가 되는 길을 찾는 건 모순적이거나 비현실적인가.
<꿈의 공장>은 국내 최대 기타기업인 콜트·콜텍이 공장을 해외로 이주시키고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며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자 기나긴 복직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김성균 감독의 전작 <기타 이야기>가 콜트·콜텍의 착취의 역사와 노동자들의 증언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꿈의 공장>은 한국, 독일, 일본, 미국을 넘나들며 그들이 싸우는 방식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그 싸움은 외롭지 않다. 영화는 단지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기타의 사용자인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들이 기타를 중심으로 만나 서로의 처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뮤지션들은 자신들이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펜더, 깁슨, 아이배네즈와 같은 기타 브랜드들이 저 멀리 한국의 콜트·콜텍에서 주문 생산되었으며,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거리가 좁혀지자, 음악이라는 환상 또한 거둬진다.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던 기타가 그 자유에 위배되는 상품이라는 진실을 듣는 뮤지션들의 표정은 그들이 처한 궁지처럼 난감하다.
누군가는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하고, 누군가는 가난한 뮤지션은 저임금으로 대량 생산된 싼 기타를 살 수밖에 없다고 슬프게 체념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상품으로서의 기타가 아니라, 음악으로서의 기타가 해야 할 일, 그 기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고심한다. 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떠났던 기타라는 상품은 그렇게 노동자들의 세상으로 섞여 들어오는 음악이 된다.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연대한다는 상투적인 문구가 이 영화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위로다. 무지도, 냉소도, 금욕도 아닌 위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마음. 어쩌면 그것이 위의 회의적인 의문에 대한 대답의 시작인지 모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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