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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시가 되어 춤을 추고..." (노동과세계)
작성자 콜트빨간모자
댓글 0건 조회 2,688회 작성일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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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어느 봄,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알았다. 수 십 년간 제 몸 부서져라 기타를 만들었지만 공장 문 앞에 붙은 하얀 종이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쫓겨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출근을 해서야 알게 되었다. 5년의 투쟁은 그렇게 시작했다.

2008년 어느 겨울, 노래하고 춤을 추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은 그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그 기타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Made in Korea’의 선명한 표식을 단 채 전 세계 기타의 30%를 생산하던 자랑스러운 한국기업 콜트? 콜텍의 기타를 들고 그들은 그 기타를 만든 노동자들과 만났다.
 
홍대 앞 어느 지하 클럽 빵에서 어색한 웃음으로 만난 이들의 거리를 허문 것은 공통의 관심, 기타였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첫 기타는 콜트라고 했다. 가격 대비 좋은 소리를 내는 기타였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콜트 기타를 통해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제 자신이 콜트 기타를 들고 있음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그들에게 노동자들은 말했다
“그 기타, 진짜 좋은 거예요. 버리지 말고 평생 간직해서 좋은 노래 해주세요.”
 
자신을 내쫓은 회사의 기타를 여전히도 최고의 기타라고 칭찬하는 노동자들 앞에서 그 기타는 다시 신나게 노래하며 사람들의 발을 춤추게 하고 어깨를 걸게 했다. 그렇게 예술과 노동은 뜻깊은 연대를 시작했다.
“그런 나를 알고 있나, 살인자의 손을 가진 박영호, 넌 알고 있나!!”(밴드 한음파 ‘참회’)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림을 그리고, 시가 쓰여지자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비난하는 콜트? 콜텍에 대해서, 5년간 투쟁해온 노동자들에 대해서. 독일, 일본, 미국으로 5번에 이어진 세계의 연대도 그렇게 이루어 졌다. 기타를 들고 찾아온 세계 유명 뮤지션들의 연대는 국제적인 후지락 페스티발이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들에게 무대를 양보하게 했다. 도쿄에서도, 뉴욕에서도,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콜트? 콜텍의 이름은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쓰였고, 그 옆에는 수많은 시민들과 문화예술이 함께 했다.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인천 부평의 어느 도로 옆 비어버린 공장 농성장에서, 15만 8천 볼트가 흐르는 한강 송전탑에서, 대전의 어느 시골에서 고추를 심으며 싸우고 있다. 제 몸에 불을 붙여가며 싸웠지만 회사는 교섭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노동자들에게 ‘2억’ 씩 주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사람들을 기만했다. 그뿐이 아니다. 콜텍 문화재단을 만들어 ‘나눔, 공감, 소통’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추악한 짓을 덮으려 하고 있다. 10년 동안 1000억 원을 벌어들인 회사가 경영상의 위기로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에 대해 2009년 고등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콜트? 콜텍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그들에게 기타는 여전히 착취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피카소는 전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전쟁이 가져오는 수많은 불행과 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함께 송전탑에 오르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림으로, 춤으로, 노래로, 그리고 그저 단순히 함께 어깨를 걸고 뛰는 것으로 싸울 수 있다. 예술과 노동의 만남은 수많은 파장을 만들어 내고 그 파장은 또 다른 울림이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소셜네트워크의 시대, 소통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두 어 줄의 문장 속 이야기들을 공감하고 전한다. 때로 이야기의 전달은 누군가의 더러운 입을 닫게 하고, 어떤이들의 삶을 지켜내기도 한다. 몇 초면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듣는 시대에 5년간 투쟁하고 있는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지금 바로 우리 옆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누군가의 삶은 ‘늘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어 지나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기타로, 펜으로, 몸으로 언어를 만들고 소통의 장을 열어주었다. 청사초롱을 든 쥐 그림 한 장으로 G20의 허상을 비웃고, 철거촌의 펜스에 새겨진 한자 한자 쓰여진 시들로 그 어느 담벼락보다 견고하게 그들의 삶을 지켰다. 기타는, 음악은 언어가 되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노래를 듣고, 그림을 보고, 시를 읊으며 우리는 함께 싸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은 없다. 음악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없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진행하는 콘서트도 어언 3년. 그렇게 이어진 음악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콜트·콜텍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용산참사현장으로, 두리반으로,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매주 화요문화제로 넓혀져 가고 있기도 하다.
 
기타가 시가 되고, 시가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춤을 추며 다시 우리 모두의 노동이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또 노래하고 춤을 춘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뛰는 나의 열정이, 연대가 우리의 삶을 다시 지켜낼 수 있도록,..
 
정소연 (문화연대/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노동자들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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