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 후보가 출마한 지역에 ‘표적 출마’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양당의 중앙당이나 지도부들은 지역구에서 맞붙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나, 최근 민노당의 움직임은 이 같은 입장과는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것이 표적 출마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판단이다.
무연고 후보들 속속 맞불 출마
실제로 이미 두 당 후보가 출마를 공식 선언한 관악갑, 관악을, 부산진을, 창원갑 이외에도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후보가 확정된 곳에 속속 후보를 내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후보가 진보신당 후보가 출마를 확정 발표한 곳에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8일,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가 출사표를 낸 강남을 지역에 20대 여성 후보인 김재연 씨를 출마시키겠다고 밝혔으며, 19일에는 정몽준, 정동영의 맞대결로 전국적 관심 지역구로 급부상한, 동작을에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김지희 후보를 낸다고 발표했다. 동작을에는 진보신당에서 김종철 후보가 지난 17일 출마를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 민주노동당 대변인 출신인 박용진씨가 진보신당 후보로 나오는 강북을에도 민노당의 김혜신 후보가 나올 알려졌으며, 진보신당의 목영대 후보가 나오는 의정부을에도 민노당 민태호 후보가 준비 중이다.
진보신당 김봉래 후보가 출마하는 강원 강릉에는 민노당 염우철 민주연합노조 대의원이 출마할 예정이며, 진보 백순환 후보가 출마하는 경남 거제에 경우도, 민노당 김경진 후보가 나올 예정이다. 해당 지역구에 출마할 민노당 예비후보들은 이미 선거운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노당이 진보신당 후보가 있는 지역에 이처럼 ‘맞불 출마’를 선언하고 나설 경우, 총선 기간 동안 양당의 경쟁은 훨씬 격렬한 양상을 띨것으로 예상된다.
동시 출마는 공멸의 길 vs 대중 평가 받아야
이같은 두 정당의 지역구 중복출마에 대해 이를 진보진영 분열을 확인시키는 행위로, 두 당 모두가 공멸의 길을 가는 경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하는 시각이 나오고 있는 반면, 대중들에게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경쟁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의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중복 출마에 대해 “특정 지역에 연고가 없고, 인근 지역구로 나와도 큰 차이가 없음에도, 신당 후보가 나온 곳에 민노당의 후보를 내는 것은 일종의 표적 출마로 볼 수밖에 없다”며 “민노당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을 확실하게 누르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창원갑의 경우도 원래 손석형 후보가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진보신당의 최재기 후보가 출마를 하게 됐으나, 이후 민노당에서 후보를 냈다”며 “이 지역도 사실상 표적 출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시 출마 지역의 진보신당 후보들은 민노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민노당 후보들은 진보신당이 오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자신들은 지역 당원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강남을에서 민노당 김재연 후보와 맞붙게 될,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는 “지난 해 당이 나뉘어지기 전인 민노당 시절, 제가 강남을 지역에 출마하기로 정해져 있었고, 분당 이후에도 이 지역에는 나올 후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강남갑이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겹치기 후보’를 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쉽고,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선택
19일 민주노총 임원 출신인 민노당 김지희 후보가 출마한 서울 동작을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 역시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겠지만, 내심 아쉽고 불필요한 공천 행위”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강북을 박용진 후보는 “현재 민노당 김혜신 후보가 이미 선거운동을 하고 다닌다”며 “여기는 민노당 시절 후보를 뽑은 곳인데, 지역에 연고도 없는 사람을 겹치기 공천하는 사태를 주민들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후보는 “진보진영의 이런 행위는 창피한 일이고, 민노당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번 총선에서 주민들이 심판해 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을에서 민노당 민태호 후보와 경쟁하게 될, 진보신당 목영대 후보는 “민노당 민태호 후보가 얼마 전 우리 선거사무실 건물 바로 아래층에 사무실을 내고 선거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것은 민노당이 신당을 잡기 위해 추진하는 맞불 작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목 후보는 “민노당이 겹치기 출마에 대한 명분을 세우기 위해, 옆 지역구인 의정부갑에 연고도 없는 김인수 후보의 출마를 갑작스럽게 추진하고 있다”며 “외부의 비판적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 모양새를 갖추는 작업을 양면으로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에서 민노당 염우철 후보와 맞붙게 될 진보신당 김봉래 후보는 “민노당 당적으로 강릉에서 출마하는 염우철 후보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라며 “그동안 출마를 안 하겠다고 하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출사표를 던져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김 후보는 “그 후보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 상층부의 압력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승부
경남 거제 민노당 김경진 후보는 최근 탈당했다가 갑자기 복당한 사람이다. 진보신당 백순환 후보는 “민노당 후보로 나오는 김 후보는 2년 정도 민노당 활동을 하다 현재는 탈당해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라며 “그런 분이 갑작스럽게 복당해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백 후보는 또 “진보 양당이 충돌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 하지 않"지만 “그래도 승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면 돌파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지역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대부분 지역 차원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남 거제의 김경진 민노당 후보는 “종북주의 논란과 민노당 거제시위원회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와 탈당했던 것”이라며 “다시 당으로 복귀해 총선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지역 당원들의 순수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어 “나중에 대승적 차원에서 상대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도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표적 출마라는 표현은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원 강원의 염우철 후보는 “이번 출마는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내 자신의 순수한 결정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며, “출마 시점 상 오해가 있는데, (표적 출마는)전혀 사실 무근으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을 나오는 김재연 후보는 “아직 지역당원 투표가 끝나지 않아 어떤한 답변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민노당 박승흡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은 ‘상향식 공천’을 하기 때문에, 중앙당 차원에서의 지역구 후보조정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공식적 안건으로도 올라온 적이 없었다”며 “신당과 지역구가 겹치는 곳에 민노당 후보가 나온 것에 대해 자칫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지역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박 대변인은 또 “이번 총선에서 많은 후보를 내고 발굴해야, 정당의 지지율도 올릴 수 있지 않느냐”며 “진보신당은 불필요한 오해를 버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총선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