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교육공약’ 지지한 이유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총선 10여일 전, 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 선거구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가 공교육 특구화를 통해 관내 공립 중·고등학교를 핀란드형 자율학교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심상정 후보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바로 다음날 선거본부에 찾아가 지지를 선언하고, 이후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며 대중 유세와 개별적인 설득 작업을 벌였다.
현재 교육 개혁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실질적으로 정치권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혁 방향은 고교평준화 원칙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선진국과 정반대이며, 사교육비를 더욱 늘린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통합민주당의 정책은 교육예산 증액을 통한 ‘교육여건 개선’을 강조할 뿐(물론 이것도 시급한 과제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방식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발상은 없다. 내가 아는 한, 역대 총선이나 지자체 선거를 통틀어 현존하는 학교를 근본적으로 리모델링해 보자는 공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문국현 후보가 각각 고교평준화를 전제로 학교 체제를 바꿔보자는 공약을 내놓긴 했지만, 전국의 학교를 일시에 바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공교육 특구화’와 ‘핀란드형’ 자율학교, 특구화를 위한 특별법의 주요항목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형태로 지역공약이 제시된 것은 대단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핀란드형 교육의 핵심은 교육기회 균등을 전제로 한 ‘책임교육·맞춤교육·창의적교육’에 있다. 나는 이 가운데 유권자인 학부모들에게 가장 와닿는 것은 ‘책임교육’이라고 보고 이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실제로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원망은 대부분 학교의 ‘무책임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학생들의 잘못된 발음을 교정해주지 않고, 논술고사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손봐주지 않으며, 학부모가 교사와 상담하다가 ‘공부 좀 더 시키셔야겠어요’, ‘이 과목은 학원에 보내세요’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는 현실에서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해 거의 모든 기대를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심상정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 고교에서 방과후 학교 강사로 일하고, 공교육 특구화가 실현되면 아예 교사로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암울한 교육현실 속에서 이 공약에 희망을 걸고 ‘말뚝을 박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초반에는 지지율이 한나라당 후보의 3분의 2 수준이었지만 공격적인 교육공약이 심상정 후보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문소리·박찬숙씨를 비롯한 지지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어우러지면서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지지율을 대부분 역전시켰다. 비록 애석하게 낙선하긴 했지만 최종 개표 결과 차이는 5%대로 좁혀져 있었고, 무엇보다 한나라당 후보의 교육공약보다 훨씬 큰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진보 정치와 교육 개혁의 미래를 위해 값진 경험이었다고 자평한다.
이범 곰TV·EBS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