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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나가다
댓글 0건 조회 4,131회 작성일 200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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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실력 없어도, 결국 아줌마가 이겼다"

[인터뷰]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기사입력 2008-11-17 오전 7: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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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처럼 모두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고 마냥 손뼉치고 웃기에는 510일은 너무 길었다.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이 네 계절을 차례로 지나는 동안 숨 막힐 듯했던 고통의 시간도 함께 흘렀다.

그토록 그립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문화제에서 "아줌마"들은 자꾸만 울었다. 돈이 없어 전기도 끊기고 아이들 급식비도 내지 못했던 그 "지옥 같은" 나날들이 새삼 서러웠다. 함께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미안해 눈물이 고였다. 510일을 함께 보낸 이들, 이제 각자 매장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그리움이 미리 솟아올랐다.


▲ 그토록 그립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문화제에서 "아줌마"들은 자꾸만 울었다. ⓒ프레시안

울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원래 잘 안 운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볼 때만 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김경욱 위원장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있는 아줌마 조합원들이 무려 20일 동안이나 점거했던 홈에버 월드컵점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던 그 순간, 그는 울었다. "그럼 그때는 왜 울었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관련 기사 :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실수한 겁니다")

"그땐 영화였잖아요."

그리고 이날 그 영화는 마침내 끝이 났다. 영화 같던 510일을 아줌마 조합원과 함께 살아내고 마침내 엔딩 자막을 올린 김경욱 위원장을 지난 14일 만났다. 이랜드일반노조의 복귀 전 마지막 문화제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앞이었다.

"아름다운 희생? 안타까운 희생이다"

▲ 김경욱 위원장은 협상 타결을 위해 복직을 포기한 노동조합 간부 12인의 행동을 놓고 "아름다운 희생이 아니라 안타까운 희생"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지난해 비정규직 계약 해지와 외주화에 맞서 시작된 "아줌마들의 반란"은 지난 13일 끝이 났다. 홈에버의 새 주인 홈플러스테스코와 노조는 지도부 12명의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 및 손·배소의 철회를 골자로 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간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타결"이었다. (☞관련 기사 : 이랜드 노조 간부 12명의 "아름다운 희생")

김경욱 위원장은 "아름다운 희생이 아니라 안타까운 희생"이라고 말했다. "교섭 타결을 위해 결단을 내려 준 간부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지만, 결코 미화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조 투쟁에 제일 열심히 앞장 섰던 사람들이 투쟁을 끝내는 시점에서 희생 당해야 한다는 전례가 될까 걱정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희생이 아니라 역부족이이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다."

김경욱 위원장은 "힘의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회사가 힘이 셌다기 보다는 노조가 힘이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힘으로 노조를 누르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해고자 복직까지 얻어낼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다 소진돼 있는 상태였다. 투쟁을 이어갈 돈을 마련하는 것도 벽에 부딪힌 상태였고, 조합원 개개인의 생계 문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를 압박할 만한 투쟁 전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김경욱 위원장은 "노사의 대결에서 노조의 힘이라면 결국 매장을 멈출 수 있으냐 없느냐, 얼마만큼 멈출 수 있느냐인데 지금 우리 힘으로 홈플러스 매장 한 개라도 멈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힘이 모자라" 간부들이 복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삼성테스코? 이랜드처럼 무식하지 않았다"

간부들의 자발적 희생 덕분에 가능했던 합의였다. 동시에 또 홈에버의 주인이 바뀌면서 가능했던 타결이기도 했다. 김경욱 위원장은 "삼성테스코는 이랜드와는 질이 달랐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테스코는 첫 교섭에서 바로 외주화 철회와 비정규직 고용 보장을 수용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것이 지난 8월이었다. 이랜드를 상대로 무려 1년이 넘게 싸워도 안 됐던 그 "핵심 쟁점"이 삼성테스코와의 첫 만남에서 사라진 것.

"그 순간 모든 쟁점이 사라졌다.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해고자 문제와 손해배상 소송 등만 얘기하면 되게 됐다. 이랜드는? 말이 안 통했다. 삼성테스코는 그렇게 무식하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세련됐다."

삼성테스코의 이런 태도는 이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철저한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회사가 이랜드 조합원의 얘기를 다룬 책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를 수백 권 사서 전 관리자에게 읽히고 개선 과제를 보고서로 제출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장도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5번이나 읽었다고 직접 얘기했다. (☞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관련 기사 보기)

"노사관계 경험이 전혀 없는 사측이 처음에는 노조를 많이 의심하고 낯설어했지만 급속도로 연구를 많이 해 나중에는 전문가가 다 됐더라. 노동법은 물론이고 조합원 심리 상태까지도 철저하게 분석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인정할 만했다."

김경욱 위원장은 "각자의 입장들이 팽팽하게 맞설 때 회사가 노조를 배려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삼성테스코는 이날 이들의 문화제에 "복귀를 축하한다"며 떡과 음료수를 보내 왔다.

▲ 이랜드그룹과 삼성테스코는 달랐다. 삼성테스코는 이날 이들의 문화제에 "복귀를 축하한다"며 떡과 음료수를 보내 왔다. ⓒ프레시안

"매장에서는 가장 순종적인 아줌마들도 저항할 수 있다는 것 보여줘"

그렇게 아줌마들의 510일의 투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세상이 "비정규직의 상징"으로 불렀던 싸움에 대해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이라도, 하층 노동자라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매장에서는 가장 순종적인 아줌마들도 싸울 조직이 있고 공간만 열리는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고, 때로는 남자보다도 정규직보다도 더 잘 싸운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가 보여 준 그 가능성이 이후에 차별받는 노동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합의문 내용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500일을 올 수 있었던 힘도 거기에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이랜드 그룹에게 가졌던 아줌마들의 분노가 "아직도 미처 사그러들지 않았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그가 꼽은 또 하나의 힘은 "연대"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에서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지원해 준 사람은 참으로 많았다. 월드컵점, 면목점, 인천점 등 주요 매장이 있는 곳마다 "지역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이들과 함께 했다. 마지막 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은 한결 같이 함께 해 준 사람들에게 "말로 다 못할" 고마움을 표현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이 땅에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여겨질 때에도, 어느 순간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에도, 이 땅의 국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헤매던 순간에도 우리가 사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문화제에서 "연대 동지에게 드리는 글"을 읽어 내려간 월드컵분회 소속 황선영 조합원의 말이었다.

"민주노총은 실력 부족, 서비스연맹은 돈 가지고 장난"

▲ 500일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에서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지원해 준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프레시안

"지난해에는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민주노총의 지원과 관심도 해가 바뀌면서는 완전히 발길이 끊겼"어도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거기에 있었다. "이랜드 투쟁을 승리하지 못하면 깃발을 내리겠다"고 장담했던 민주노총에 대해 김경욱 위원장은 "의지는 있되 실력은 없다"고 혹평했다.

"비판이 아니라 실체를 얘기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실력이 그 정도다. 총연맹 지도부가 최선을 다해도 현장이 움직이지 않고 조직이 동원되지 않는 것은 현실이다. 당연히 언론 플레이나 이벤트성 투쟁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는 "결국 민주노총 지도부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정규직 조합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랜드일반노조의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을 놓고도 날카로운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돈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얘기했다.

"조합원 생계비 명목으로 서비스연맹 조합원에게 1인당 2000원 씩 걷은 돈도 우리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이나 일본 노동단체에서 보내 온 이랜드 투쟁 특별 지원금 수 천 만원도 어디에 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특히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랜드일반노조가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을 어기고 진보신당에 비례 대표 후보를 낸 이후 이른바 서비스연맹의 "자금 탄압"은 심해 졌단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 외에 수많은 시민단체와 개인, 학생 등의 지원금을 뉴코아노조와의 공동투쟁본부 기금으로 서비스연맹이 직접 관리했는데 치졸한 방법으로 지원을 지연시키곤 했다"고 말했다.

"1주년 문화제 때도, 홍콩 원정 투쟁 때도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돈을 못 준다고 했다. 그러다 한두 달 지난 뒤에 슬그머니 돈을 입금하곤 했다. 문화제 비용 200만 원을 서비스연맹이 못 준다고 나왔던 1주년 문화제 때는 정말 분노로 치를 떨었다."

김 위원장은 "그때 이 투쟁이 끝나면 민주노총을 탈퇴해야겠다고 까지 생각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관련 기사 : "광화문 뒤덮은 촛불 보며 절망했다")

"이남신, 홍윤경, 이경옥 있어 외롭지 않았다"

"돌아보면 지난 510일이 다 기억에 남는다"는 그에게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뻔한 질문을 해봤다. 모든 질문에 주저 없이 답을 하던 그가 처음으로 2분 여 동안 말이 없었다. 짧은 침묵 끝 돌아 온 답은 "없었다"였다.

"항상 뭔가에 짓눌려 있었다. 내일은 뭐하지? 다음 주엔? 다음 달엔?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할까가 늘 고민이었다. 카드빚은 어떻게 막지? 아들 치료는 어떻게 하지? 그런 것들로 늘 힘들었다."

조합원들은 월드컵 점거 했을 때가 "따스한 봄날 같았다"지만, 그는 "그때도 하루하루가 초 긴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해방구였으니까 조합원들은 점거 농성 때가 좋았을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자기 목소리도 못 내던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으니. 지도부는 결과가 예측되니 하루하루가 조마조마 했다."

그는 "그래도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 홍윤경 사무국장, 이경옥 부위원장을 얘기했다. "510일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는 그들과도 이제는 "안녕"이다. 이랜드일반노조는 이랜드노조와 홈플러스 노조로 나눠진다. 홈에버 소속이었던 이경옥, 김경욱은 이번 합의안에 따라 퇴사하지만, 2001아울렛 등 다른 회사 직원이었던 홍윤경, 이남신은 다시 이랜드를 상대로 복직 투쟁을 해야 한다.

이 조합원들과도 "마지막"이라는 생각 탓일까, 문화제에서 홍윤경 사무국장은 "비록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는 산별노조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면서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복직을 못한 9명의 지도부는 많이들 얘기하는데, 이랜드 투쟁 과정에서 징계 해고된 이남신, 홍윤경 등 6명은 사실 잊혀져 있다. 그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의 복직을 위해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을 상대로 계속 싸울 것이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조합원들에게 남긴 김경욱 위원장의 당부였다.

▲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김경욱 위원장과 함께 최종 해고자 명단에 오른 이경옥 부위원장(가운데)은 "내가 울면 다 울음 바다가 된다"고 다짐했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프레시안

"다시 돌아가면? 미쳤어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면서 동시에 관리자 출신의 노조 위원장이었던 그의 개인 삶에 지난 510일은 어떤 의미일까?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기간이었다. 동시에 가장 많이 늙어버린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로 다시 돌아간다면 또 다시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그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미쳤어요?"

"원래 하고 싶어서 뭘 하는 성격이 못 되고, 해야 되면 그냥 하는 성격이라 당분간 별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한다"며 그는 웃었다.

다음 달 있을 새 홈플러스노조의 위원장 선거에 해고자 위원장으로 또 출마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는 "할 수는 있지만 안 한다"고 했다. "아줌마 부대의 반란"을 이끈 그가 밝힌 이유가 의미심장했다.

"힘없는 위원장이 되기 때문이다. 위원장은 현장에서 조합원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어쨌든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받고 성공이라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임 활동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떠난 지 몇 십 년이 된 노조 간부들이 현장 노동자의 심정과 요구를 어떻게 아나. 그 사람들은 노동자 아니다. 노조 활동가나 노조 관료일 뿐."


▲ "잡은 손 놓지 맙시다." 2개 노조로의 분리를 앞두고 마지막 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장미 꽃으로 쓴 글귀였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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