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비리세력의 계보를 파헤친다
작성자 국민파
본문
민주노총 비리세력의 계보를 파헤친다 2008/12/23 12:28:51
니들이나 잘해라
-------------------
자민통 계열의 노연과 전국회의가 세운
민주노총 이수호-강승규-이석행 집행부는
민주노총을 자본의 나팔수, 조선일보에 넘겨버렸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과 강승규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아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05.1.26. 조선일보)
1. 2001년 1월, 일부 연맹위원장 중심으로 구성된 ‘벽제파’는 강승규를 민주노총 위원장후보로 추대했다!
2001년 민주노총 3기 임원선거에서 강승규 민주택시연맹위원장, 이용식 건설연맹위원장, 오길성 화학연맹위원장, 차수련 보건의료노조위원장, 김형근 서비스연맹위원장, 이수호 전교조위원장 등 일부 연맹위원장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벽제파’는 강승규를 민주노총 위원장후보로 추대했다.
이때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이석행을 사무총장후보로 추대하여 벽제파와 연합했다. 그러나 강승규-이석행후보는 패배했다.
- 2001년 8월, 강승규는 민주노총 위원장출마 자금마련 위해 뇌물을 받았다!
2001년 8월 2일 노조사무실에서 이사장 박씨에게 “민주노총 차기 위원장에 출마하려면 조직관리 차원에서 단합회를 열어야 하니 경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 뒤 2500만원을 송금받았다. 이후 2003년 10월을 비롯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재직 중인 2005년 9월 15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2600만원을 받았다. (서울신문, 2005.10.10)
- 2001년 3기 선거 패배후 강승규가 민주노총 위원장출마자금을 뇌물로 받기 시작할 무렵 ‘벽제파’는 ‘노동운동전략연구소(노연)’로 이름을 바꾸고 4기 선거를 준비했다!
강승규 비리사건에서 밝혀진대로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를 위한 자본으로부터 조직관리자금을 받아 ‘노연’을 중심으로 조직관리를 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 강승규가 민주노총 4기 집행부의 핵심임원 중 한명이 어려웠던 시절에 3000만원을 생활비조로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3기선거 패배 후 강승규가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렸고, 모국장은 민주노총을 그만두고 이른바 강승규의 ‘광화문 캠프’에 결합하는 등 4기 집행부 세력들이 강승규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또한 택시연맹을 내외에서 보조금 관련 비리 소문도 상당히 퍼져 있었다.
- 2004년 4기 임원선거까지 강승규가 동원한 자금출처에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노연’ 세력은 물론이고, 4기 집행부를 장악하기 위해 이들과 연합한 전국회의 역시 검증해야 할 상황들을 눈감아 버렸다.
강승규가 구속되고 난 후에도 민주노총 사무총국에서는 강승규 면회가 조직되고 있었고, 조준호를 비롯한 노연과 전국회의 핵심멤버들이 강승규 면회에 줄을 이었다.
- 2004년 1월 민주노총 4기 임원선거에서 노연과 전국회의는 후보를 놓고 각축을 벌였고, 결국 노연은 이수호 위원장-강승규 수석부위원장 카드를 전국회의는 이석행 사무총장 카드를 내어 연합을 했다.
결국 민주노총 4기 집행부는 강승규가 자본으로부터 받은 조직관리자금으로 탄생한 것이다.
전국회의는 강승규 등 노연의 비도덕적, 비운동적 경향에 우려하여 노연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2002년 8월 민주노총 임원보궐선거에서 노연과의 연합을 거부하고 전국회의 현장활동가들을 후보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유덕상후보 등 범좌파와의 대결에서 강봉진, 김영수, 김연태, 신승철 등 현장에 밀착한 후보들을 내세웠으나 신승철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패배했다. 결국 전국회의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력장악에 필요한 표를 얻기 위해 그들 스스로도 운동성과 도덕성을 의심하는 노연의 대중적 명망성과 야합하는 길을 택했다.
비리에 발목이 잡힌 4기 집행부, 사회적합의주의 강행으로 조직파탄! 투쟁전선 교란!
-전국택시사업조합 이사장은 강승규에게 “택시요금 부가세 감면액 사용지침이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결정되도록 노조원들을 설득해 달라”며 돈을 건넸다.(2005.10.9, 경향신문)
그렇다. 자본으로부터 받는 뇌물에 공짜는 없다.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노조사무실에서까지 전화를 하여, 그것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직에 있으면서까지,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는데 과연 정권의 정보기관에서 몰랐을까? 납득하기 어렵다.
2004년 5월 31일, 4기 집행부는 조직내 논의없이 노사정지도자회의에 전격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005년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교섭안 논의 중 대대가 무산된 후 2월, 3월 뻔히 파행이 예상되는데도 고집스럽게 대대를 강행했다. 그 선두에 강승규가 서서 진두지휘했다.
왜 그랬을까? 자본으로부터의 뇌물수수에 발목이 잡혀 있었던 것 말고는 앞뒤 설명이 되지 않는다.
2. 민주노총을 죽인 비리세력은 2006년 2월 10일 임원보궐선거에서 다시 살아남아 비리를 ‘계승’하려 한다!
- 4기 집행부 출범 직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으로 발탁되고, 민중연대로 파견되여 운동 상층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얻은 조준호를 앞세워 노연과 전국회의는 민주노총 장악을 꾀하고 있다.
조준호는 기아자동차에서 1997년 자동차연맹 위원장 선거에서 운동노선상 차이가 없는 배범식 위원장과 경선하여 기아자동차라는 대공장 조직력을 동원하여 일약 연맹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통합 금속연맹 위원장선거에서 패배하고, 기아자동차노조를 발판으로 상층진출을 위해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기아자동차노조 내의 이른바 자주민주통일 경향의 활동가들은 ‘기노회’로 조직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자동차 17대 위원장 선거에서 조준호는 기노회 후보로 추대되지 못하자 이에 반발하여 기노회를 분리하여 ‘실노회’를 조직하고 위원장후보로 출마하여 떨어졌다. 2005년 기아자동차 18대 위원장선거 출마를 위해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다시 위원장후보로 출마했다. 자민통 그룹은 ‘기노회’, ‘실노회’, ‘전노회’로 3분되어 각각 후보를 내었고, 조준호는 실노회 후보로 출마했으나 6명의 후보 중 5위로 낙선했다.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직을 분리한 것이 운동노선이나 정책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노조위원장 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이 속한 단위노조의 조합원들로부터도 거듭하여 신뢰를 받지 못하는 데, 무엇을 믿고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출마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후보에 대한 조합원 대중의 판단은 무시하고, 오직 정파논리에 의한 표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2004년 1월 4기 임원선거에서 김태일 사무총장후보는 ‘노연’ 구성원으로서 이수호-강승규-이석행 선거대책본부의 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바 있다. 이제는 그의 도덕성 문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노연 대표 강승규의 비리사건에 대해 어떤 반성을 했는지 드러난 바 없다. 그가 노연을 탈퇴했다는 얘기도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이 강원랜드에서 빠찡꼬를 하다가 조합원들에게 들켜 문제제기를 받고 있다. 그의 소속 단위노조인 생산성본부노조에서의 비리사건이 인터넷에 고발되고 있다. 그런데도 김태일 사무총장후보는 일언반구 해명도 없다.
노연과 전국회의는 비리연루 전황이 드러난 강승규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추대했던 과오를 또 다시 범하고 있다
니들이나 잘해라
-------------------
자민통 계열의 노연과 전국회의가 세운
민주노총 이수호-강승규-이석행 집행부는
민주노총을 자본의 나팔수, 조선일보에 넘겨버렸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과 강승규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아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05.1.26. 조선일보)
1. 2001년 1월, 일부 연맹위원장 중심으로 구성된 ‘벽제파’는 강승규를 민주노총 위원장후보로 추대했다!
2001년 민주노총 3기 임원선거에서 강승규 민주택시연맹위원장, 이용식 건설연맹위원장, 오길성 화학연맹위원장, 차수련 보건의료노조위원장, 김형근 서비스연맹위원장, 이수호 전교조위원장 등 일부 연맹위원장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벽제파’는 강승규를 민주노총 위원장후보로 추대했다.
이때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이석행을 사무총장후보로 추대하여 벽제파와 연합했다. 그러나 강승규-이석행후보는 패배했다.
- 2001년 8월, 강승규는 민주노총 위원장출마 자금마련 위해 뇌물을 받았다!
2001년 8월 2일 노조사무실에서 이사장 박씨에게 “민주노총 차기 위원장에 출마하려면 조직관리 차원에서 단합회를 열어야 하니 경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 뒤 2500만원을 송금받았다. 이후 2003년 10월을 비롯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재직 중인 2005년 9월 15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2600만원을 받았다. (서울신문, 2005.10.10)
- 2001년 3기 선거 패배후 강승규가 민주노총 위원장출마자금을 뇌물로 받기 시작할 무렵 ‘벽제파’는 ‘노동운동전략연구소(노연)’로 이름을 바꾸고 4기 선거를 준비했다!
강승규 비리사건에서 밝혀진대로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를 위한 자본으로부터 조직관리자금을 받아 ‘노연’을 중심으로 조직관리를 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 강승규가 민주노총 4기 집행부의 핵심임원 중 한명이 어려웠던 시절에 3000만원을 생활비조로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3기선거 패배 후 강승규가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렸고, 모국장은 민주노총을 그만두고 이른바 강승규의 ‘광화문 캠프’에 결합하는 등 4기 집행부 세력들이 강승규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또한 택시연맹을 내외에서 보조금 관련 비리 소문도 상당히 퍼져 있었다.
- 2004년 4기 임원선거까지 강승규가 동원한 자금출처에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노연’ 세력은 물론이고, 4기 집행부를 장악하기 위해 이들과 연합한 전국회의 역시 검증해야 할 상황들을 눈감아 버렸다.
강승규가 구속되고 난 후에도 민주노총 사무총국에서는 강승규 면회가 조직되고 있었고, 조준호를 비롯한 노연과 전국회의 핵심멤버들이 강승규 면회에 줄을 이었다.
- 2004년 1월 민주노총 4기 임원선거에서 노연과 전국회의는 후보를 놓고 각축을 벌였고, 결국 노연은 이수호 위원장-강승규 수석부위원장 카드를 전국회의는 이석행 사무총장 카드를 내어 연합을 했다.
결국 민주노총 4기 집행부는 강승규가 자본으로부터 받은 조직관리자금으로 탄생한 것이다.
전국회의는 강승규 등 노연의 비도덕적, 비운동적 경향에 우려하여 노연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2002년 8월 민주노총 임원보궐선거에서 노연과의 연합을 거부하고 전국회의 현장활동가들을 후보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유덕상후보 등 범좌파와의 대결에서 강봉진, 김영수, 김연태, 신승철 등 현장에 밀착한 후보들을 내세웠으나 신승철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패배했다. 결국 전국회의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력장악에 필요한 표를 얻기 위해 그들 스스로도 운동성과 도덕성을 의심하는 노연의 대중적 명망성과 야합하는 길을 택했다.
비리에 발목이 잡힌 4기 집행부, 사회적합의주의 강행으로 조직파탄! 투쟁전선 교란!
-전국택시사업조합 이사장은 강승규에게 “택시요금 부가세 감면액 사용지침이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결정되도록 노조원들을 설득해 달라”며 돈을 건넸다.(2005.10.9, 경향신문)
그렇다. 자본으로부터 받는 뇌물에 공짜는 없다.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노조사무실에서까지 전화를 하여, 그것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직에 있으면서까지,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는데 과연 정권의 정보기관에서 몰랐을까? 납득하기 어렵다.
2004년 5월 31일, 4기 집행부는 조직내 논의없이 노사정지도자회의에 전격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005년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교섭안 논의 중 대대가 무산된 후 2월, 3월 뻔히 파행이 예상되는데도 고집스럽게 대대를 강행했다. 그 선두에 강승규가 서서 진두지휘했다.
왜 그랬을까? 자본으로부터의 뇌물수수에 발목이 잡혀 있었던 것 말고는 앞뒤 설명이 되지 않는다.
2. 민주노총을 죽인 비리세력은 2006년 2월 10일 임원보궐선거에서 다시 살아남아 비리를 ‘계승’하려 한다!
- 4기 집행부 출범 직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으로 발탁되고, 민중연대로 파견되여 운동 상층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얻은 조준호를 앞세워 노연과 전국회의는 민주노총 장악을 꾀하고 있다.
조준호는 기아자동차에서 1997년 자동차연맹 위원장 선거에서 운동노선상 차이가 없는 배범식 위원장과 경선하여 기아자동차라는 대공장 조직력을 동원하여 일약 연맹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통합 금속연맹 위원장선거에서 패배하고, 기아자동차노조를 발판으로 상층진출을 위해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기아자동차노조 내의 이른바 자주민주통일 경향의 활동가들은 ‘기노회’로 조직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자동차 17대 위원장 선거에서 조준호는 기노회 후보로 추대되지 못하자 이에 반발하여 기노회를 분리하여 ‘실노회’를 조직하고 위원장후보로 출마하여 떨어졌다. 2005년 기아자동차 18대 위원장선거 출마를 위해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다시 위원장후보로 출마했다. 자민통 그룹은 ‘기노회’, ‘실노회’, ‘전노회’로 3분되어 각각 후보를 내었고, 조준호는 실노회 후보로 출마했으나 6명의 후보 중 5위로 낙선했다.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직을 분리한 것이 운동노선이나 정책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노조위원장 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이 속한 단위노조의 조합원들로부터도 거듭하여 신뢰를 받지 못하는 데, 무엇을 믿고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출마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후보에 대한 조합원 대중의 판단은 무시하고, 오직 정파논리에 의한 표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2004년 1월 4기 임원선거에서 김태일 사무총장후보는 ‘노연’ 구성원으로서 이수호-강승규-이석행 선거대책본부의 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바 있다. 이제는 그의 도덕성 문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노연 대표 강승규의 비리사건에 대해 어떤 반성을 했는지 드러난 바 없다. 그가 노연을 탈퇴했다는 얘기도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이 강원랜드에서 빠찡꼬를 하다가 조합원들에게 들켜 문제제기를 받고 있다. 그의 소속 단위노조인 생산성본부노조에서의 비리사건이 인터넷에 고발되고 있다. 그런데도 김태일 사무총장후보는 일언반구 해명도 없다.
노연과 전국회의는 비리연루 전황이 드러난 강승규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추대했던 과오를 또 다시 범하고 있다
- 이전글자본, 정규직에 비수 꺼내다 08.12.25
- 다음글본부장님(?)인자 용접하러 가이소 08.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