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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금속노조? 산별교섭 완성?
작성자 산별
댓글 0건 조회 2,905회 작성일 20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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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산별
30만 금속노조? 산별교섭 완성?
  [금속노조 5기 출범 2년 공약평가①-3개년전망] 현장약화 무너진 지도력 비정규외면

금속노조 5기 지도부가 출범한 지 2년이다.

    영역               연도                             공약                                                        결과
                       2007년      중앙교섭 성과 계승(산별교섭 토대)       완성4사 중앙교섭 참가 가짜확약서
산별교섭       2008년      산별교섭 완전 쟁취(고용안정 중심)       GM대우 가짜확약서, 15대 요구안 실종
                       2009년      산별교섭 제도화(산업정책 중심)           15만 산별교섭 사실상 포기
                       2007년     15만이 함께하는 1단계 총파업               한미FTA총파업, 중앙교섭 총파업 5일
산별투쟁       2008년     15만이 함께하는 2단계 총파업              15만이 함께하는 총파업 단 1일
                       2009년     확실한 승리                                                중앙교섭 투쟁 사실상 불가능

 
2006년 6월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한 역사적인 산별노조 전환을 시작으로 15만 금속노조의 체계를 마련한 11~12월 완성대의원대회, 2007년 1~2월 15만 조합원 직선으로 치러진 선거가 이어졌다. 조합원들의 높은 기대와 열망을 안고 금속노조 정갑득 지도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정확히 2년이 지난 지금,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기대와 열망은 사라져 버렸다. 금속노조에 대한 실망을 넘어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업지부 해소에 반대하는 1만3천명의 기아차 조합원 서명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금속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실망과 우려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금속노조에 대한 기대와 열망 사라지다
 
2년 전 정갑득-남택규-최용규 후보조의 모토는 “현장 강화! 강력한 지도력! 비정규직과 함께 산별노조 완성!”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금속노조는 공약과는 정반대의 길에 서 있다. 현장은 약화됐고, 2년 산별교섭 실패로 인해 지도력도 크게 약화됐다. 비정규직 문제는 직권조인 논란을 일으켰던 하이닉스매그나칩의 ‘잘못된 합의’를 시작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망과 한탄만이 남았다.


  당시 정갑득 위원장은 ‘산별협약 확보 및 조직발전 3개년 전망’을 내세웠다. 금속노조 3개년 전망은 산별교섭 및 산별투쟁을 통해 완전한 산별협약을 쟁취하고, 비정규직 및 공단 조직화와 제조산별을 통해 2009년 30만 금속노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장밋빛 공약’ 그대로였다.

 
산별교섭의 경우 2007년 산별교섭 토대를 마련하고, 2008년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산별교섭을 완전히 쟁취한 후, 2009년 산별교섭을 제도화시켜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2007년 자동차4사의 중앙교섭 참가에 대해 ‘가짜 확약서’ 논란을 일으키며 첫해부터 아무런 성과도 없이 조직적 혼란만을 남긴 채 끝나버렸다. 2008년 사용자들은 중앙교섭에 불참하며 ‘확약서’가 가짜라는 것을 입증시켜줬고, 2008년 중앙교섭에서 GM대우차의 가짜확약서를 다시 승인함으로써 15만 산별교섭 성사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금속노조는 완성4사만 중앙교섭에 불러내지 못한 게 아니라 금속노조에 새로 가입한 주요 사업장들도 끌어내지 못했다. 2007년 10월 5일 시점으로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에 가입한 회사는 92개 사업장 20,639명이었다. 2008넌 9월 4일 기준으로는 106개 사업장 25,466명으로 조금 늘었다. 그러나 2003년 금속노조가 사용자들과 맺은 기본협약에 108개 사업장이 서명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사실상 정갑득 지도부 2년 동안 산별교섭 투쟁은 성과가 전무하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중앙교섭 합의 내용도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금속노조는 조합원 교육시간과 노동안전 요구는 의미 없는 최저수준으로 합의했고, 핵심적인 비정규직 요구는 ‘노력’이니 ‘관계기관’이니 눈속임을 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우리 요구를 모두 폐기한 내용이었다. 살인적인 물가폭등의 시기에 최저임금 5만원 인상이 유일한 성과였다.


  금속노조가 2003년 ‘기존임금 저하없는 주5일근무제’, 2004년 ‘손배가압류 금지’와 금속산업최저임금,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 2006년 해외공장ㆍ신기술 도입시 노사합의 등을 쟁취한 것에 비춰봤을 때 2007~2008년 중앙교섭 합의는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역            연도                      공약                                                       결과
                                      비정규 조직화사업단 구성                        비정규 조직화사업단 구성×
                   2007년      미전환사업장 전환 완료(1만5천)             미전환사업장 전환
                                     제조산별 추진(화섬, 플랜트)                      제조산별 추진
조직발전
                  2008년     금속하청 및 지역공단 조직화(5만)           하청?공단조직화(2,900명) 공약달성율 5.8%
                                    제조산별 건설(6만 추가)                            제조산별 건설(금호타이어 4,002명) 달성율 6.7%

               2009년      30만 산별시대 개막                                     조합원 15만4천명(4천명 증가)
                                  (350만 제조업노동자 대변)                        (15만 조합원 대변×)

 
투쟁이 아니라 거래를 선택하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도부는 투쟁이 아닌 거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중앙교섭에 나오고,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았을 때의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속노조 지도부는 자본과의 거래를 통해 성과를 남기기를 원했다.

 
지도부는 사용자협의회와의 물밑교섭을 통해 수용 가능한 안과 그렇지 않은 안을 확인한 후 ‘GM대우 의견접근안’이 통과되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중앙교섭 성사 투쟁은 단 한번으로 끝났다. GM대우 의견접근안도 마찬가지였다. 투쟁도 하기 전에 안을 만들어 조직 내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 중앙교섭 성사투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2007년에는 한미FTA저지 총파업과 5일간의 중앙교섭 파업이 있었다. 그러나 15만이 함께 하는 2단계 총파업을 하겠다는 2008년에는 7월 2일 단 하루만 130개 사업장 113,014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했을 뿐이었다. 전 국민이 간절히 원했던 촛불총파업도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30만 산별노조 공약 VS 조합원 8천명 증가

 
조직발전 3개년 전망에 대한 공약 역시 헛공약에 지나지 않았다.
  2007년 미전환사업장 전환을 통해 1만5천명의 조합원을 가입시키겠다는 공약은 대우조선, 현대미포조선 등 10개 사업장 11,000명 중에서 단 한 개의 사업장도 산별전환을 하지 못했다. 공약달성율은 0%인 셈이다.


  비정규 조직화사업단을 구성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사업을 벌이겠다고 공약했으나 비정규 조직화사업단은 구성조차 되지 않았고, 현대자동차 1사1조직 실패로 인해 비정규직 조직화는 확산되지 못했다. 

 
2008년에는 훨씬 심각했다. 금속하청 및 지역공단 조직화사업을 통해 5만명을 조직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조직한 인원은 1사조직을 통한 하청노동자 조직화 1,400명(기아차 1,000명, 타타대우상용차 340명 등), 공단 조직화 29개 사업장 1,503명(대의원대회 자료집 참고) 등 2,900명이 전부였다. 4개 사업장 324명이 탈퇴한 것을 계산하면 그나마도 적어진다.

 
제조산별 건설을 통해 6만명을 추가로 조직하겠다는 계획은 금호타이어 4,002명이 전부였다.

 
2009년 30만 산별시대를 개막하겠다는 3개년 마지막 해가 밝았지만 30만 금속노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원은 단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금속노조 조합원은 2007년 정갑득 위원장이 출범했을 때인 2007년 3월 232개 지회 144,970명에서 2008년 12월 236개 지회 153,013명으로 8,043명이 늘어난 데 그쳤다. 그것도 금호타이어 4천명과 1사1조직을 통한 1,500명이 새로 가입한 것을 제외하면 2,500명이 늘어났을 뿐이다.

 
정갑득 집행부의 임기는 6개월 남았다. 7월부터 사실상 선거운동에 들어간다고 보면 남은 기간은 4개월이다. 결국 정갑득 집행부가 내세운 3개년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0%인 셈이다. 산별교섭 완전 쟁취?산별교섭 제도화와 30만 금속노조 시대라는 공약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2006년 6월 이후 15만 금속노조 출범 이후 정권과 자본은 산별노조의 힘과 위력이 어떨 것인지에 대해 대단히 두려워했다. 당시 재벌신문들은 산별노조로 전환되어 정치투쟁이 확대되고, 노동자들의 권익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연달아 쏟아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정권과 자본은 금속노조를 ‘종이호랑이’만큼도 여기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가 ‘공생협약‘이나 양보교섭을 얘기하면 모를까, 투쟁을 통해 산별교섭과 조직확대를 이루겠다고 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년간 금속노조는 정권과 자본이 두려워하는 투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 강화! 강력한 지도력! 비정규직과 함께 산별노조 완성!”이라는 공약은 2년이 지난 지금 “현장 약화! 무너진 지도력! 비정규직 외면한 산별노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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