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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산별
신규조직화가 노동운동 희망
[특집-노동운동성찰②] 늙은 노동조합 쇠퇴하는 노동조합 … 신규노조의 열정으로
지금의 민주노조가 존재하는 것은 선배노동자들의 헌신과 투쟁의 역사로 만들어진 소중한 산물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수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폭력에 억눌리고 구속되면서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은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안정화의 길로 접어든 노동조합은 어느새 처음의 그 절박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진 긴장감 뒤엔 관료화가 남았다. 살아 움직임이 정지된 채 흐르지 않는 작은 웅덩이 안의 고요한 물 같은 상황이다. 노동조합의 간부는 권력을 잡기 위해 조직된 집단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해보려고 하는 조합원들이 없다보니 늘 그 나물에 그 밥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합원들이 나이도 많고 개인주의가 팽배해 잘 따라 주지 않는다며 불평만 늘어놓을 뿐 조합원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또 현장의 조합원들은 성과금, 임금인상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말 중요한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거나 투쟁하지 않으려 하고 반복되는 노동조합의 투쟁 구호에 식상하다는 표정으로 집회 장소보다 ‘웰빙’하는 운동에만 목숨을 건다.
자본과 대립 회피하는 순간부터 관료화 시작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자본과의 대립보다는 타협을 선호하다 보니 노사 간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정함에도 명분과 정당성에 대한 토론보다 자본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고려(?)하는 내부적 토론이 중심에 있다.
거리에 나가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구호를 외치지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공장 안의 비정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노동조합의 울타리조차 열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 행태, 완성차의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핏대 세워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들 사업장 자본이 더 열악한 2차 업체에 저지르는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조합의 이해 관계가 다름에도 한 몸이 되어 뒹구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더 심각한 것은 칼날이 무뎌져 더 이상 상대를 위협할 능력도 상처를 낼 기능도 사라지는 것이다. 무뎌진 칼날, 바로 자본과의 전쟁을 앞 둔 우리의 모습이다.
신참내기 노동조합의 역동성
억압받고 사람으로 인정받아 본적 없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이야 말로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자본에 대한 적대심과 긴장감도 팽팽하게 유지하며 어떻게 하면 현장의 문제로 투쟁을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포장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없이는 임금협상 타결 없다는 기조를 정하고 투쟁해서 정규직화를 쟁취한 곳,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선물이 정규직과 동일하게 지급되지 않았다며 잔업거부 투쟁으로 자본에 사과를 받아 내고 선물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한 곳, 비정규직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계약해지된 동지가 복직되지 않는다면 투쟁을 끝내지 않겠다며 투쟁해서 정규직화를 쟁취한 곳 모두 새롭게 노동조합을 만든 곳이다.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투쟁들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정신은 소중한 것이다. 마무리를 걱정해서 시작도 해보지 못하는 기존의 조직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다.
과거의 심장소리를 다시 기억하며
역사가 오래된 노동조합이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경험과 연륜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포기하고 해 보지도 않고 예단하는 것의 문화에 너무 익숙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의 열정과 오염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며 자각하지 못하고 관성화된 우리 일상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할 만큼의 모험심과 거침없이 돌격하는 용기와 패기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처음 그 정신, 과거의 숨막히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다시 한 번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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