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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열사가 죽었는데 이대로 가라고?
[현장에서] 고 박종태 열사 추모 결의대회 … 저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데∼
용산이 아직도 분도 삭이지 못한 체 저렇게 있은데 또 한분의 동지가 열사가 되셨습니다.
마치 투쟁사업장이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투쟁사업장이 되고 있는데 또 다시 투쟁사업장이 생기듯이 말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체 사람이 죽어야만 분노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5월 9일 오후 2시 대한통운 대전지사. 박종태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나무 아래 노동자들이 8천여명이나 모였습니다. 그가 살아생전 그토록 원했던 연대는 그가 죽어서야 이뤄졌습니다. 운송료 30원을 올려달라던 노동자 78명을 문자메세지로 해고한 극악한 자본에게 그가 목을 매달고서야 우리는 눈길을 돌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모인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저 고개를 숙인 체 무기력하게 집회를 지켜봅니다. 열사의 아내가, 열사의 동료가 추모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모두가 눈물만 흘릴 뿐 별다른 기척 없이 집회는 진행됩니다.
죽어서야 이루어진 연대
열사가 살아생전 아내에게 그랬다지요.
“여보 그래도 나 아직 괜찮은 사람이지?”
그렇습니다. 괜찮은 사람이기에 조직을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버렸겠지요. 괜찮은 사람이기에 동지들을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버렸겠지요.
태양이 뜨겁습니다. 마치 우리도 뜨거운 태양처럼 투쟁의 의지를 뜨겁게 달구라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집회를 마치고 열사가 계신 중앙병원으로 행진을 시작합니다. 불과 수 킬로를 행진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우리가 외치는 구호들이 진정성이 있는지, 열사가 그토록 원하던 것들을 우리가 반드시 쟁취할 수 있는지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중앙병원에 도착해서 뒤늦은 조문을 하고 열사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머리를 숙입니다. 이 날 집회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동지들이 발언하였습니다. 열사 앞에서 한 발언인 만큼 모두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일부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항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합니다. “야 이 씨발놈들아, 열사가 죽었는데 이대로 간다고?” 이날 집회가 끝나면 거리로, 고속도로로 나가 싸운다고 했는데 갑자기 투쟁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열사가 죽었는데 이대로 간다고?”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자기 윗옷을 찢으며, 장대로 방송차를 내려치며 절규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분노가 있었고 집회의 규모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한 판 싸움을 해 볼만 했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도부는 다음을 기약하고 대오를 해산시켰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열사가 되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열사가 되는 세상입니다. 더 이상 열사가 나오지 않게 투쟁을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러다 우리 중 누군가, 내 사랑하는 동지가, 혹은 내가 열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째 끊었던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50대 가장이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들립니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이들이 정권에 의해 학살되고, 운송료 30원 때문에 열사는 스스로 목을 매달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의 통곡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데 우리의 투쟁과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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