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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여고생이 가투 맨앞에 섰다
[6월 투쟁] 덕수궁 반이명박 투쟁 거점으로 … 6.10 범국민대회 6.13 총궐기
5월 30일 오후 6시 서울시청 맞은편 덕수궁 앞 차도. 시청역 12번 출구 근처에서 차벽과 전투경찰의 벌어진 틈을 이용해 빠져나온 100여명의 시민들이 도로 위에 모이더니 이내 시청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가두투쟁 행진대열의 맨 앞에 선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뒤늦게 따라나온 금속노조 조합원, 진보신당 당원들이 행진에 합류했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20여명이 연행됐고, 인도로 밀려난 시민들은 “못살겠다 명박퇴진”, “독재타도 명박퇴진”을 외치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 시각, 덕수궁 앞에는 3천여명의 노동자, 학생들이 모여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민중생존권 민주주의 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한 시간이 넘게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경찰벽이 뚫렸어요. 빨리 거리로 나갑시다”라고 호소했고, 민주노총과 주최 측에 거친 욕설까지 퍼부으며 가두투쟁을 요구했지만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여고생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가 가두투쟁을 벌였다.
여고생은 싸우는데 민주노총은?
이 투쟁을 시작으로 덕수궁 앞 투쟁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시민들은 시청역 12번 출구 쪽에서 돌멩이와 계란을 던지며 경찰의 폭력과 강제연행에 맞섰다.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호등 앞에 쓰러져있던 한 학생이 연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경찰을 에워싸 도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결국 경찰에 잡혀있던 학생은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조금 후인 저녁 7시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서 조금씩 도로로 나오던 노동자, 학생,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기 시작했고, 300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시청광장 바로 앞까지 100m를 진출하다 경찰의 진압으로 40여명이 연행됐다. 이에 분노한 시민, 학생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경찰차를 부수며 격렬한 저항을 계속했다. 경찰은 70여명을 연행했다.
이날 덕수궁 앞에는 교복을 입은 100여명의 여고생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서 초를 나눠주고, 이명박 탄핵 서명을 받았으며, 경찰 맨 앞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를 외치고, 선두에서 가두투쟁을 벌였다.
덕수궁 제2의 청계광장으로
덕수궁은 제2의 청계광장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30일에 이어 31일에도 밤새 문화제를 열며 덕수궁을 지켰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되는 7월 10일까지 덕수궁 시민분향소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은 30일 새벽 분향소를 군홧발로 짓밟았지만 투쟁의 거점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1년 전 청계광장이 촛불항쟁의 중심이 됐던 것처럼 덕수궁이 반이명박 투쟁의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반이명박 투쟁의 기운을 더욱 높이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5월 30일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이명박 정권과 지배세력은 북한의 핵폭탄보다 제2의 촛불항쟁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청와대는 내각교체를 검토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당황해하며 ‘거리’가 아닌 ‘국회’에서 해결하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5월 30일 <중앙일보>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무현의 유서를 1면 제목으로 달아 정권과 자본이 반이명박 투쟁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1년 전을 기억하자
정확히 1년 전인 2008년 5월 31일 새벽, 촛불시위대는 광화문, 인사동, 서대문 세 방향에서 청와대로 진출해 4.19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동십자각 앞까지 진출해 이명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네티즌들은 이날을 5.31 항쟁으로 불렀고, 이는 6~8일 72시간 투쟁과 6.10 100만 촛불을 만들어냈다.
5월 2일 시작된 촛불투쟁은 5월 24일 전면적인 가두투쟁으로 발전했고, 이명박의 지지율을 7%까지 떨어뜨리며 전 국민적인 지지와 호응 속에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촛불총파업을 벌여내지 못했고, 결국 촛불투쟁은 사그라 들었으며, 이명박은 퇴각하는 촛불을 처절하게 복수하며 군홧발로 짓밟았다. 민중들은 촛불의 실패로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였고, 이명박의 ‘공포정치’로 두려움에 떨며 위축됐지만 노무현의 죽음으로 다시 투쟁과 저항의 깃발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노동운동
핵심은 노동운동이다. 민주노총은 6월 10일 범국민촛불집회와 6.·13 범국민대회, 6.28 국민총궐기를 걸고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건설노조가 5월 27일부터 파업에 돌입했으며, 화물연대는 6월 11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5,115명 해고에 맞선 철도노조 총파업 등 이명박에 맞선 투쟁이 준비되고 있다.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의 핵심은 역시 금속노조다. 금속노조는 6월 3일 전 간부 상경투쟁과 경주지부 총파업을 시작으로 6월 9일 확대간부 파업, 6월 10일 2시간 파업, 6월 19일 전면총파업을 결정했다. 경제위기 노동자 죽이기에 맞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직장폐쇄, 공권력투입 위협에 맞서 힘찬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이 할 일은 명쾌하다. 현장의 모든 투쟁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조합원과 간부들을 서울로 집결시키고, 시청과 덕수궁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가두투쟁을 벌여내는 것이다. 밤늦게까지 시민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포정치에 숨죽여있는 촛불들을 다시 거리로 불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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