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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80년대식 가두시위로
[6월 투쟁] ‘광장 공포증’ 걸린 이명박의 공포정치 … 희생 각오한 투쟁 필요
민중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봉쇄되고 있다. 아니 민중들의 말할 수 있는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가 경찰병력의 물리력에 의해 짓밝히고 있는 독재의 시대로 회기하고 있다.
시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시청광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인 5월 27일 시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시민추모제도 열리지 않았다. 다만, 국민장 마지막 날인 5월 29일 노제를 위해 잠시 열린 시청광장은 30일 새벽 다시 경찰병력이 진압하고 닭장차로 에워쌌다. 뿐만 아니라 이제 서울 4대문 안에서의 집회는 물 건너 간지 오래고, 복면금지법(?)이라 불리는 집시법 개악안이 추진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이명박 정권으로 하여금 ‘광장’을 두렵게 하고, 민중들이 모이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민중들과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불러온 무분별한 시장주의, 무한정한 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민중들의 고통을 담보로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하는 가진 자들의 정책을 쏟아내는 이명박 정권에게는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민중들의 저항이 가장 무서운 변수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광장을 봉쇄하면 된다?
우리가 촛불 1년을 기념하여 ‘놀라운 대중의 역동성과 정신을 계승시켜 나가자’는 토론을 진행할 때 이명박 정권은 독재시절 많이 듣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촛불에 대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만들어왔다.
분석의 결과는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발생된 촛불집회는 MBC PD수첩의 오역을 시민단체들이 선동하여 발생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폭력이 발생했는데도 언론매체들이 이를 옹호했다”, “특히 초기에 광장에서 시작된 야간 촛불 문화제를 막지 못하여 소수의 촛불이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응은 언론과 광장의 봉쇄다. 이명박의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앞세워 언론장악에 나서고 언론 미디어법 개악에 나선지 오래다. 민중들의 눈과 귀를 막겟다는 것이다. ’불법폭력 시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단체(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1천 8백여 개의 단체)에 대한 집회금지 방침과 아울러 4대문 안 집회를 계속 불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마저 불법집회로 덧씌우고 있으며, 야간 문화제를 위한 광장의 사용은 어림없다. 민중들의 입을 막아 작은 불씨라도 철저하게 짓밟아 큰 불로 확산되는 것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80년대로 돌아간 민주주의
작년 촛불정국을 뜨겁게 달구웠던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와 [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모든 국민은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잠재적 범죄자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사회질서 유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용납할 수 없다는 하위 법률의 임의적 해석에 근거하여 저들은 뻔뻔하게 ‘신고되지 않은 불법시위’ 운운하며 우리의 동지들을 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 기본원리, 개인의 자유조차 유린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 했나? 죽은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는, 빼앗긴 국민의 권리를 되찿기 위해서는 경찰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탄압을 딛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쉽게 예측 할 수 있다. 애통하게도 다시 7~80년대 군부독재 치하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
시내 곳곳 가두투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합법적 집회가 봉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광장에 모일 수 있는 자유,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봉쇄되는 속에서는 봉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대응 물리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역량 구축에 자신이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전술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80년대식 가두시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한 곳에 모일 수 없다면 시내 곳곳으로 흩어져 가두로 나가 우리의 말과 우리의 요구를 전달해 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단순집회 참가보다 더 높은 조직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지금의 대중조직 구조에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저 지겨운 경찰병력에 의해 광장이 봉쇄되고 이에 분노한 간헐적 저항만이 있는 상황을 반복할 것인가? 새로운 전술 속에서 간부들이 훈련되고 조합원들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훈련해 나가자. 그렇게 민주주의는 독재에 대한 저항 속에서 성장해 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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