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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발 말이 아닌 실천을
[고 박종태 열사를 보내며] 비정규직 해고?차별 못막으면 곧바로 정규직 공격
20일 대전에서 박종태 열사를 보내며 많이 울었습니다. ‘자기 설움에 운다’고, 내가 서러웠습니다. 내가 꼭 박종태열사 같아서 울었습니다.
영결식 내내 비정규직을 생각했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아니 이 땅의 수많은 박종태가 아직도 하루살이가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비정규직이라는 처참한 계급이 생기고 나서 비정규직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정규직은 차별을 해도 괜찮고 해고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자본의 편의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동자들은 이를 아주 당연시 여겼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짤려 나간 비정규직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쌍용차의 정리해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정규직만을 해고하던 자본은 이제 자신감을 얻었는지 정규직에게까지 정리해고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짤려나간 수많은 비정규직
이러다가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습니다. 이러기 전에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대항해 싸웠더라면, 좀 더 공세적으로 싸웠더라면 어땠을까요.
내 공장에서 조직되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같이 연대해 왔더라면, 내 공장에서 짤려 나가는 비정규직을 한 번만이라도 돌아봤더라면, 그들과 연대해서 투쟁하였다면 어땠을까요.
다 짤려 나가고 몇 남지 않았는데 비정규직과 연대한다고 그것이 아름다운 연대일까요. 아름다운 연대이지요. 아름다운 연대 맞습니다.
그러나 좀 더 일찍 연대를 실현했더라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했더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정말 힘 있게 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정규직 짜르고 정규직에게 더 많은 기득권을 준 적 있나요?
짤려 나간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으로 다른 공장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짤려 나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졌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이 짤리고 나서 결국은 정규직에게 해고의 칼날이 향하는 것은 보았어도 비정규직이 짤리고 나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득권이 주어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쌍용차 다음이 GM대우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근거는 아마 GM대우차 비정규직 900여명이 이미 공장 밖으로 나간 상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다음은 현대차가 되겠군요.
이미 1사 1조직이 세 번씩이나 부결이 되었고 이번에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자본은 우리의 약한 고리를 어찌 그리도 잘 알고 있는지요. 아니, 우리는 그 동안 너무도 착실히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보여주고 투쟁을 회피함으로 자본에게 탄압의 빌미를 주었는가요.
비정규직 방패를 버리지 말라
비정규직이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라고요? 기꺼이 방패가 되겠습니다. 정규직 동지들의 방패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그러니 방패를 버리지는 말아주세요. 방패를 버리면 정규직 동지가 다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비정규직은 ‘동네북’입니다. 배치전환에, 조기퇴근에, 우선해고에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두들겨 맞고 있을 때 외면하는 정규직 동지들이 두렵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두려운 것입니다. 비정규직을 통제하는 정규직이 아닌 우리와 같이 싸워줄 정규직동지가 보고 싶습니다.
고 박종태 열사도 그러하지 않았을까요? 택배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모두가 연대하였다면, 단결하여 투쟁하였다면 고 박종태동지는 열사가 되지 않았겠지요. 열사 투쟁 내내 우리는 ‘내가 박종태다. 열사정신 계승하자’라는 구호를 수 백 번 외쳤습니다.
더 이상 열사가 나오지 않게 하는 마지막 방법은 실천
이제 열사는 떠났습니다.
이렇게 보내는 게 아닌데, 이 정도로는 열사가 원했던 어느 것 하나도 쟁취하지 못했는데, 너무도 미안하고 너무도 슬펐습니다. 투쟁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부족했습니다. 열사의 한을 풀자고 그렇게 외쳤지만 열사의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열사는 정신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저 남아있는 정신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떠나신 열사의 염원을 이루는 길이고 더 이상 열사가 나오지 않게 하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김형우 금속노조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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