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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노동자
병원비 무상이면 안락사할까?
연대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의 교훈 … 한나라당 ‘존엄사법’ 사회적 살인
지난 2월 한나라당 의원 신상진과 김세연은 ‘존엄사법’, ‘삶의 마지막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들은 모두 의학적으로 의미없는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권리와 의사표시를 정당화한 것이다.
다만, 두 법안의 차이점은 미성년자, 신생아의 경우 신상진은 법정대리인이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도록 했고, 김세연 안은 허용하지 않는 점이다. 지난 해인 2008년 9월 국립암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존엄사’에 대해 87.5%가 찬성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의 위험을 보여준 것이 연대 세브란스 병원의 김 할머니다. 법원은 6월 23일 김 할머니에 대해 생명 연장을 위해 16개월간 사용했던 호흡기를 떼는 것(=연명치료 중단)이란 결정을 내렸다. 생명유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유도하는 일종의 ‘소극적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김 할머니는 11일째 자연호흡을 통해 생존해 있다.
사실 인간의 죽음은 삶, 생명의 일부 요소일 뿐이다. 우리의 몸 세포는 매일 생성과 소멸이 이뤄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죽음’은 단지 생성이 소멸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안락사는 매우 사회정치적인 이유에서 행해졌다. 1999년에 상영된 ‘나라야마 부시코’란 일본 영화는 일본판 고려장이 얼마나 사회정치적인 문제인지를 잘 보여줬다.
70세가 되면, 나라야마 산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69세의 건강한 오린 할머니는 죽을 때가 되자 쇠약함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빨을 부러뜨린다. 흉년으로 마을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오린 할머니는 아들을 재촉해 스스로 나라야마 산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오린 할머니의 개인 의지가 아니라 가족 및 부락 등 공동체의 생존 물자 부족이 사회적 자살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런 제도는 동서양 모두에 존재했다. 한국의 고려장, 유대인들의 노인을 벼랑으로 떨어뜨리는 풍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사회적 부가 풍요로워진 자본주의에 들어서서 안락사를 가장 대표적으로 악용한 것은 독일의 히틀러다. 나찌 독일은 ‘안락사’를 명분으로 정신장애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 열등민족으로 여긴 유대인 등 20만명을 대량 학살했다. 독일에서 안
락사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한국의 법제도는 안락사를 살인행위로 규정해 왔지만, 이번 법안이 법제화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특히 의사출신인 신상진의 안은 장애인이 태어나면 모두 ‘안락사’할 수 있도록 완전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의료인, 정치인들이 안락사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편안하고 안락한 죽음”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경우 3명 중 2명은, 사회경제적 부담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말기와 관련해 62.3%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이 있다고 가정한 경우에 본인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비율은 44.9%로 대폭 줄었고, 가족이 해야 한다가 49.1%나 됐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오린 할머니처럼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말기 환자들이 생존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모든 병 치료가 무상이라면 안락사는 순전히 개인의 ‘자기 결정권’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과 그 가족에게 무거운 의료비용이 전담된다면, 환자를 포함한 그 가족 성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안락사를 동의할 수 있다. 그 주된 대상은 가난한 노동자와 그 가족, 특히 장애인, 노인들이 희생자가 될 것이다.
안락사 법안들은 인간 존엄성의 기본인 생명권을 사회가 책임지지 않으려 사회적 살인을 용인하려는 것이다. 무상의료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안락사를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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