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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이겨서 굴뚝을 내려가고 싶어요
[호소문②] 쌍용차비정규지회 서맹섭 부지회장 … 원하청연대의 모범을 지켜주십시오
11일 토요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2천여명의 경찰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지게차를 동원해 공장 정문과 남문을 막아놓은 바리케이트를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컨테이너를 끌어내고 철조망을 뜯어내고 정문 경비실을 장악하더니, 공장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이제 남아있는 것은 우리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는 도장공장과 이곳 굴뚝뿐입니다.
오늘(12일)로 이곳에 올라온 지 61일이 되었고, 공장점거파업은 52일을 맞았습니다. 1998년 정리해고에 맞서 현대자동차 동지들이 굴뚝에 올라간 지 38일만에 내려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곳에 있습니다.
“아빠, 내 생일 다가오는데 선물 사줄 거지?” 일곱 살 먹은 큰 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래, 아빠가 내려가서 꼭 선물 사줄게.”하고 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세 살짜리 아들 녀석이 전화로 아빠가 보고싶다는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지난 9일 밤 거의 11시가 되었을 무렵, 아내와 아이들만 있는 집에 경찰이 출두요구서를 가지고 초인종을 눌러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굴뚝에 있는 모습을 매일 경찰 헬기로 촬영을 하면서,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까지 쳐들어가 가족들을 괴롭히는, 정말 비열하고 잔인한 자들입니다.
2008년 가을, 정규직 전환배치로 비정규직 350명이 또 다시 공장 밖으로 내몰릴 무렵이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동지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을 만나 금속노조에 가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노조운동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 문제로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정규직 동지들이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절, 정규직 동지들이 저희 곁을 지켜 주셨고, 저희가 가는 길마다 함께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굴뚝과 도장공장에서 함께 어울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9일이었던가요? 서울에서 가두투쟁을 마치고 동지들을 태운 버스가 끝도 없이 공장으로 들어오고, 동지들의 손에 하나 둘 촛불이 켜져 1만개의 촛불이 공장을 환하게 밝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동지들 손에 든 촛불 하나하나의 온기가 이곳 70m 굴뚝 위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저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6월 26~27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잔인한 공장침탈과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끝난 후 금속노조 동지들은 6월 29일과 7월 1일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총파업을 벌여 공장을 세우고, 이곳 평택으로 달려와 주셨습니다. 저는 망원경으로 30도를 육박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공장을 지켜주셨던 동지들의 모습을 가슴 벅차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까지 이 사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투쟁과 희생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때문이겠지요. 아니,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실패한다면, 다른 모든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지요.
1998년 38일간의 영웅적인 정리해고 저지투쟁을 전개하셨던 현대자동차 동지들, 2001년 1750명의 정리해고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벌이셨던 GM대우자동차 동지들, 그리고 부도로 인한 노동자 고통강요에 맞서 싸우셨던 기아자동차 동지들께 간절하게 호소드립니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동지들, 꼭 이겨서 이곳 굴뚝을 당당하게 걸어 내려가고 싶습니다.
7월 12일 밤. 70m 굴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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