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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안에 갇히길 원하십니까?
작성자 자본앞잡이
댓글 0건 조회 2,939회 작성일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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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산별

공장안에 갇히길 원하십니까?


  현대차 김 대의원 동지에게 드리는 편지① 쌍용차 연대와 지역지부 전환


몇 번을 망설이다 어렵게 현대차 울산공장에 계신 김 대의원 동지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동지께 목숨을 건 쌍용차 동지들과 함께 하는 파업과 산별노조 지역지부 전환을 통한 연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1사1조직과 중앙교섭 돌파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질문1. 쌍용차 연대파업이 정말 불가능했습니까?


  첫 번째는 쓰러져가는 쌍용차 동지들과 함께 하는 파업이 정말 불가능했냐는 질문입니다.


  지난 7월 13일부터 다음 날까지 장장 16시간 동안 진행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는 시작부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의원 현장 발의로 채택된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승리를 위한 대책’ 건이 논의될 때였지요. 현대차 한 대의원 동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현대차는 공권력 투입시 총파업하자는 안건이 지부 대대에서 부결되었는데 금속노조 대대에서 만장일치로 찬성하라고 하면 우리는 못한다”구요. 그러면서 만장일치를 반대했지요.


  그렇습니다. 지부장이 사퇴했고, 조기 선거가 결정됐고, 지부 대의원대회에서 쌍용차 연대파업 건이 부결됐지요. 다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봅시다. 동지들은 2월 16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4말5초 총파업 투쟁의 일정을 맞추지 않으셨지요. 투쟁을 준비했던 지역지부 동지들이 한 달을 기다려 5월말 6월초 총파업 투쟁을 하자고 했지만 현대차지부는 그것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5월 13일 쌍용차 동지들이 70m 굴뚝에 올라가고, 5월 22일 1천명이 옥쇄파업에 돌입하고, 금속노조가 5월말 파업찬반투표를 진행했지만 동지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6월 10일까지 찬반투표를 끝내자는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 물론 기아와 GM대우 동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6월 10일 중소사업장 2만여 동지들만 파업을 벌였을 때 동지들은 울산대공원에서 열린 지역 집회에 300여명 정도가 참가하셨지요. 중소사업장 동지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6월 19일 파업을 전개하고 전 조합원이 참여하기로 했던 1박2일 전 조합원 상경투쟁 역시 동지들은 파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쌍용차 동지들이 도장공장에서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동지들은 지부가 사퇴하고, 노조 규약에 따라 금속노조가 임단협을 진행한다는 것마저 거부하고 조기선거를 결정하면서 동지들을 기다리던 쌍용차 조합원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은 단일노조인 금속노조가 정치파업이나 연대파업도 아닌, 합법적인 임단협 파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자는 것조차 현대차 내부 일정으로 거부되고, 쌍용차 동지들과 함께 하는 파업도 부결되는 것을 정말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김 대의원 동지! 조합원들이 회사의 논리에 휘둘리고 현장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보십시오. 2006년 6월 산별노조 전환을 성공한 동지들이 2006년 10∼11월 한미FTA와 비정규악법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에 10차례에 걸쳐 참가하면서 현대차 조합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을 당당하게 벌이셨지 않습니까? 그것도 임단협 투쟁이 아닌 정부가 말하는 불법파업을 말입니다. 당시 다른 자동차3사가 하지 못했을 때 동지들이 가장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1996~7년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 2002년 발전노조 연대파업, 2004~2005년 비정규직법 저지 총파업, 2006~2007년 한미FTA저지 총파업을 동지들은 당당하게 만들어냈습니다.


  얼마 전 현장의 활동가들이 쌍용차 공권력 투입시 파업을 벌이자는 서명에 순식간에 2천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참가했습니다. 대의원 모두가 현장을 발로 뛰면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연대를 호소했다면 훨씬 더 많은 조합원들이 함께 하지 않았을까요?


  쌍용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는 GM대우는 물론 현대와 기아차에서조차 노동자 희생과 양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합원들에게 알려냈다면 어땠을까요?


  쌍용차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하면 비정규직을 맘대로 쓰고 맘대로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법 개악, 생산현장을 비정규직으로 넘치게 하는 파견법 개악,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 요건완화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조합원들에게 알려냈다면 파업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질문 2. 지역지부 전환을 통한 연대를 왜 거부하십니까?

  두 번째는 지역지부 전환을 통한 연대를 왜 거부하시냐는 겁니다.


  김 대의원 동지, 7월 13~14일 대의원대회가 끝난 후 15일자 <한국경제>신문에 ‘금속노조 금가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기업지부로 운영돼 온 완성차 4사와 만도 노조의 지역지부 전환이 유예됐다”는 기사를 보셨습니까?


  그 신문은 대표지회장 선출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금속노조는 완성차 노조를 사업장별로 나누는 대신 조합원들이 모든 사업장을 아우르는 대표지회장을 뽑고, 이 대표지회장이 임단협을 맡도록 했다. 완성차 노조 조합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해법이었다. 이렇게 되면 완성차 노조는 사실상 기존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사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많은 대의원들은 대표지회장 선출권이 기업지부의 권한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전충북의 한 대의원이 “대표지회장 선출하자는 것이 단순히 대표지회장만 뽑는 게 아니라 지부장 뽑듯이 지회장 뽑고 상집도 뽑고 예산도 받는 것이냐”고 질문하면서 이제야 알았다고 하자 의장은 “나는 1년 전부터 알았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기아차 한 대의원도 여러 차례 질의를 하면서 “대표지회장이 공식적 위상이 없다고 함은 조합비를 대표지회에 배정할 수 없고, 각종 회의에 의결권이나 발언권도 없는데 대표지회장 뽑고 상집 구성하고 사업하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원안에 제출된 대표지회장은 사실상 기업지부를 유지하자는 안이라는 사실을 여러 대의원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던 것이지요. 판매와 정비 대의원들은 주로 고용불안 문제를 제기했지만, 현대차 현장의 대의원들은 기업지부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 기업지회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김 대의원 동지, “공동투쟁의 조직, 일상적 연대활동, 상호지원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산하에 지부와 지회를 둘 수 있다”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편제하도록 한 금속노조 규약을 굳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노동운동을 공장의 울타리에 가두고 단결과 연대를 막아왔던 기업별노조의 벽을 깨고, ‘더 크게 뭉쳐서 더 세게 싸우기 위해’ 산별노조를 선택했습니다.


  2003년 이해남 열사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현대, 기아차에 납품하는 충남에 있는 세원테크지회장이였죠. 그는 노동탄압에 맞서 온 몸에 신너를 끼얹고 불을 살라 산화하셨습니다. 만약 원청사 동지들이 지역지부에 편제되어 충남지부와 함께 파업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5년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대덕사가 폐업을 했을 때 만약 현대차 울산공장 동지들이 울산지부와 함께 지역파업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거꾸로,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때 산별노조가 만들어졌었다면 아마 동지들이 외롭게 싸우지는 않았겠지요.


  김 대의원 동지, 다 떠나서 대의원대회는 총회를 갈음하는 최고의 의결기구입니다. 사실상 기업지부를 유지하자는 원안이 부결되고, 노조 규약에 따라 기업지부를 해소하자는 현장발의안이 일반 안건으로 통과된 후 현대차와 GM대우 대의원들 100여명이 일제히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남아있던 320여명의 대의원들은 말 그대로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습니다. 경남지부의 한 대의원은 “자기의 의견과 배치된다고 해서 대의원들을 무시한 채 퇴장하는 작태가 금속노조의 현실입니까? 여기는 현대차지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48개 사업장이 올라와 있습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민주적인 의사진행조차 방해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퇴장하는 모습을 조합원들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부끄러워 민주노조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편지에는 비정규직과 중앙교섭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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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산별

큰형님 역할을 해주십시오


  현대차 김 대의원 동지에게 드리는 편지② 비정규직과 중앙교섭


  질문3. 비정규직 연대 위한 1사1조직이 정말 어렵습니까?


  김 대의원 동지, 이번에는 비정규직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지난달이었을 겁니다. 현대차지부 103차 대의원대회에 상정될 예정이었던 1사1조직 안건을 위해 아산, 울산, 전주 비정규지회장들이 대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다닐 때였습니다.


  비정규직 동지들이 조직을 별도로 편제하고, 가입대상을 지부운영위로 위임한다는 안을 제출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통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 때 일부 대의원들이 이런 질문들을 했습니다.


  “물량이 늘면 비정규직 쓰고 물량이 빠지면 뺐다. 지금도 물량 줄어 직영도 같이 먹고 살자고 하면 동의가 안 된다. 조합원 정서는 직영의 완충 작용을 위해 비정규직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조합원을 설득하느냐?”


  “1사1조직 되면 현대차 정규직이 모아놓은 조합비를 비정규직이 가져다 쓰는 것이냐?”

  “지부장 선거에 비정규직이 피선거권이 있다는 것인데 런닝메이트로 출마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현대차에 있는 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습니다. 즉,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했어야 할 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착취해온 노동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정규직화해야 하고, 지난 5~10년간 불법으로 착취해온 것도 돌려줘야 합니다. 정규직 동지들은 1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현장에 들어오도록 묵인하거나 방조하셨지요.


  그런데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사라지고 말았고, 이제는 제발 노조 가입의 문만 열어달라는 것도 세 차례에 걸쳐 부결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대의원 동지들 아들이 이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다닌다면 이런 얘기를 하셨을까요?


  지난 해 11월 에쿠스공장 비정규직 115명이 길거리로 쫓겨난 것을 시작으로 경제위기 이후 현대차에서 4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사라졌습니다. 지난달에도 울산 엔진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34명이 짤렸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9년을 일한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만약 정규직을 9년을 부려먹고 하루아침에 짤랐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물론 GM대우차도 정규직 전환배치로 900여명, 쌍용차도 350여명을, 중소사업장도 비정규직을 짤랐습니다. 그렇지만 1사1조직을 통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기아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총고용보장을 지켜내고 있고, 타타대우상용차는 고용보장은 물론 일부 정규직화도 이뤄냈습니다.


  1사1조직 사업을 진행하던 6월 중순 지부와 현장조직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1사1조직 되면 전부 똑같은 조합원이 되고 그러면 하청 애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주인 행새 할라할낀데 나는 그 꼴 못 본다.”


  “야간에 여유인원 좀 있어서 휴식 좀 취할라는데 새파란 놈이 자기도 같이 좀 쉬자고 댐비면 참말로 기도 안차겠다. M/H협의 해서 인원 로테이션 해야 되면 하청 애들 못간다고 버티면 참말로 보기 좋겠다. 늙은 우리가 가랴?”


  경제위기 이후 ‘무쟁의 타결’로 도배되던 지부와 현장조직 홈페이지가 6월 중순부터 1사1조직으로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 동지들은 “회사가 저렇게 나오니 이번에는 통과가 되겠구나”라며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윤해모 지부장 사퇴와 함께 비정규직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비정규직, 사무직에 대한 조직편제는 1사1조직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약에 따라 현대차지부의 규정(규칙)은 법적으로 무효이며, 비정규직을 빼고 대표를 뽑았을 때 비정규직 동지들이 소송을 걸면 당선이 무효될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다 떠나 비정규직 동지들이 정규직도 아니고, 제발 조합원으로 받아달라고 절규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외면하실 겁니까?


  질문4. 중앙교섭과 원하청불공정거래 근절는 남의 일인가요?


  김 대의원 동지, 이번에는 중앙교섭 이야기입니다. 2006년 6월 정권과 자본의 예측을 비웃으며 산별노조 전환을 성공하고, 11~12월 대의원대회와 선거를 거쳐 2007년 3월 15만 금속노조가 출범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당황한 현대기아차그룹에서 산별교섭에 대해 여러 가지를 검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습니다. 산별전환에 성공한 힘과 15만 조합원의 기대를 등에 업고 회사를 힘 있게 압박해 중앙교섭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물론 금속노조에 가장 큰 책임과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 사업장인 현대차 동지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했으니, 당연히 산별교섭에 나와라”며 강력하게 투쟁을 전개했다면 회사가 중앙교섭 조건부 참가 약속인 ‘가짜 확약서’를 쓰지 않았겠지요.


  2008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으면 지부교섭을 하지 말라’는 교섭방침은 총회를 갈음하는 대의원대회의 결정입니다. 중앙교섭은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상 당연히 최우선으로 따내야 할 교섭이며, 100여개가 넘는 중소사업장에서 이미 협약으로 확보하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지들은 산별교섭 쟁취를 최우선에 두고 조합원들을 조직하지 않았고, 금속노조의 잘못과 함께 현장의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예전에 금속 신문에 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쓴 편지를 기억합니다.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현대차의 CR이라고 불리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인해 그 고통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어떻게 전가되고 있는지를 가슴 아프게 얘기했습니다. 임단협 교섭에서 동지들이 챙기는 1천만원의 성과급 속에 하청노동자들의 피땀이 담겨있다는 절규였습니다.


  산별교섭이 이런 원하청불공정거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동지도 알고 계실 겁니다. 현대, 기아, GM대우 등 완성차와 부품업체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나오고, 금속노조가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인한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통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거꾸로 생각해봅니다. 현대차 동지들은 매년 임금협상에서 재벌신문의 ‘귀족노조’ 공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중앙교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다뤄지고, 협약이 만들어진다면 현대차 동지들에게 쏟아졌던 비난은 상당히 줄어들 겁니다. 중소사업장은 물론 대공장 조합원들을 위해서도 산별교섭은 정말 중요한 과제였지만, 동지들은 그 투쟁의 중심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은 제2의 가짜 확약서로 판명 난 2008년 GM대우차의 ‘중앙교섭 합의서’ 수준도 따내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동지들에 대한 기대와 바람


  김 대의원 동지, 가슴 속에 담겨두었던 얘기들을 두서없이 꺼낸 이유는 동지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동지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권과 자본도 동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일본의 어용노조를 본보기로 기업별노조의 고착화로 노사평화를 꿈꾸었지만, 2006년 6월 현대차 동지들의 힘으로 정말 멋지게 산별노조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저들은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계급분열을 통해 노노갈등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동지들은 울산 2, 3공장 등에서 잇따라 비정규직까지 고용보장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김 대의원 동지, 7월 13일 대의원대회에서 중소사업장 대의원들이 동지들에게 드렸던 원망과 호소, 절망과 분노는 다름 아닌 동지들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중소사업장 동지들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성을 실현하는 길이 산별노조의 길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해 왔습니다. 그래서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 함께 하고, 지역지부로 전환해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1사1조직을 통해 비정규직을 받아들이고, 산별중앙교섭을 돌파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 대의원 동지, 현대차 노동자들은 1987년 8월 민주노조를 세우고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에 연대파업을 벌이면서 노동자의 힘이 무엇인지를 아로새겼습니다. 그리고 22년, 때로는 좌절도 있었지만 역사 앞에 당당하게 걸어갔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현대차,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동지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지들이 되길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김 대의원 동지, 집안이 어려울 때 큰 형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린 동생들, 힘이 약한 아우들을 다독이고 힘을 모으면 집안에 닥친 고난도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을 넘어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동지들에게 큰 형님의 역할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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