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청산 계획”은 대량해고 음모! 대안은 “공기업화 회생”!
[성명서]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의 저항은 정당하다!
정권과 경찰은 살인적 공권력 투입을 즉각 중단하라!
사측과 정부는 파업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전면 수용하라!
해고 안 된 조합원들도 해고 반대, 공권력 투입 반대 투쟁에 동참하라!
양심을 가진 모든 노동자와 시민들도 긴급히 이 투쟁에 동참하고 연대하자!
쌍용자동차 사태는 자본(그리고 그들의 대변자인 정권)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특히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비인간성이 얼마나 극심해지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은 언제나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윤 - 그것은 노동을 착취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원천적으로 비인간적이다! - 증식 즉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하여 경제활동을 한다. 그럼으로써 수많은 노동자들을 심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더구나, 자본은 자신의 축적이 위태롭게 될 때에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반(反)인륜적으로 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때 자본은 노동자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예컨대 적절한 노동시간과 임금!)이 있음을 철저하게 묵살한다. 나아가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밥줄을 끊는 정리해고이다. 사실상 “해고는 곧 죽음”인 데도 경영을 이유로 이를 마구 자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쌍용자동차 사태는 ‘노동자의 인간적 필요’의 논리와 비인간적인 ‘자본의 이윤 증식’의 논리 두 가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자본 측이 자신의 비인간적 논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그런데도 채권단, 정부, 법원 등 관계된 기관 모두가 비인간적인 자본의 이윤 증식 논리와 그 논리로써 정당화하는 해고와 폭력 등 반(反)인륜적 행위들을 편파적으로 편들고 있다.
이에 우리는 사측이 파업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인간적 필요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과 여러 관계기관들이 그처럼 편파적으로 사측을 편드는 것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그러한 인간적 필요를 중심에 놓는 아래와 같은 방법만이 사태의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쌍용자동차 사용자 측, 채권단과 정부는 ‘청산형 회생계획’을 즉각 폐기하고 국민경제의 필요에 입각하여 “공기업화 회생계획”을 수립하라!
쌍용자동차가 지니고 있는 인적, 물적 요소들은 개별 기업의 생산성/효율성을 기준으로 하여 보거나 국민경제적 필요를 기준으로 하여 보거나 고철과 실직자로 버려질 쓰레기가 아니라 결합되어 사용되어져야 할 귀중한 생산요소들이다. 이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며, 그러기에 “회생 계획”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청산”이다.
“청산”은 한 마디로 쌍용자동차 노조 조합원들을 대량해고 하기 위해 추진되는 불순한 음모이다. 청산한 후에 회생시킨다면, 지금 해고통보를 받아 파업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도 더 고분고분하고 값싼 노동력을 쓰기 위해 추가로 해고될 것이 불 보듯 하다. 파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안은 공기업화에 의한 회생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공기업은 비록 사회적 필요를 목적으로 하지는 못할지라도 사기업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 충동을 사회적 필요를 위하여 일정하게 제한시키는 사회공공적 기업 형태이다. 기업회생과 관련해서 공기업화는 국민경제적으로 볼 때 회생시킬 필요가 있는 기업을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살리는 것과 동시에 고용을 비롯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좀 더 잘 수행하도록 만드는 검증된 방도이다.
둘째, 쌍용자동차 사측은 여러 형태로 밥줄을 자른 모든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전원 원상회복시켜라!
노동빈민이 3백만 명에 이르고 청년백수가 수 백만 명에 이르는 지금, 기업과 국가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게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대기업이라면 이러한 책임 수행에 있어서 여타의 기업에 앞장서야 마땅하다.
그런데 쌍용자동차 회사 측은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얼마 전 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에 처하지 않았는데도 비정규직 노동자 수 백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는 사회적 책임의 방기일 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거이다.
이러저런 이유로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밥줄을 자르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강자 본위의 이런 비정한 방법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거리를 나눔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정규직의 정리해고도 비정한 방법으로 약자를 희생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논리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이는 ‘대’ 즉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소’ 즉 민중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정규직의 고용유지를 위해 약자(소수자)인 비정규직을 희생시킨다는 말이나, 정규직 가운데서 다수의 고용유지를 위해 소수를 해고자로 희생시키겠다는 말이나 모두가 실은 자본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인간적 필요를 희생시키는 것을 포장하는 거짓말이다.
셋째, 쌍용자동차 사용자 측과 채권단은 노조와 노조 간부들에 대한 모든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을 취하하라
사용자 측은 자본의 논리인 소유권 절대주의에 입각하여 점거농성에 따른 생산차질과 재물손괴에 대해 금전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소유권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고 자본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그 야만적이라던 봉건제 하에서도 생산대중인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는 농토에 대해 점유권을 행사했다.
하물며 생산의 ‘사회화’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사적’ 소유권이 절대적이라는 주장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기계와 공장은 돈 들여서 철거해야 할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 집단에게 공장에 대한 점유권과 관리권이 있는 것이며, 파업 노동자들은 지금 이러한 관리권과 점유권을 - 단, 개별적인 권리로서가 아니라 집단적인 권리로서 - 정당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배·가압류 따위의 법적 수단은 착취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19세기 영국에서 쓰던 것을 21세기에 퇴행적으로 도입한 구시대적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배달호 열사, 김주익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런 구시대적이고 반인륜적 “족쇄”는 자진해서 철회되어야 한다.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노동자들은 지금 인간으로서의 저항권을 행사하고 있다. 누구인들 그 같은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저항하지 않겠는가? 생명을 유지하려는 존재라면, 존엄성을 지키려는 존재라면 마땅히 그렇게 저항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저항은 백번 정당하다.
반면, 자본의 이윤 논리를 내세워 이 저항을 무단적 폭력으로 짓밟는 것은 30여년 전 전남도청에서 쿠데타에 저항하던 광주 민주투사들을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금년 1월 용역깡패의 강제 철거에 저항하던 용산 철거민들을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부당하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거듭 지지를 표한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사측과 이명박 정권 측에게 사람의 생존과 생명을 위협하는 반인륜적 정리해고 책동 및 살인적 공권력 침탈 책동을 즉각 중지할 것과, 파업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전면 수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9. 8. 5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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