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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세상 뒤흔든 77일
[쌍용차 영웅들께 드리는 헌사] 강철군대 위대한 투쟁 노동자 가슴에 남아
잔악무도한 정권-자본 연합군 VS 마지못해 투쟁한 무능력한 산별노조
8월 6일 밤 평택역에서 77일 만에 가족과 동료를 만난 동지들의 얼굴엔 패배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최선을 다했다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다음 날 경찰서에서 만난 동지들의 두 눈엔 저주와 원망이 아닌, 희망의 눈빛이 담겨 있었습니다.
쇠총에 맞아 뭉개진 손을 움켜쥐고 나흘 만에 수술을 받은 한 동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사흘 전 경찰특공대에 맞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한 조합원은 “도장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70m 굴뚝의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87일을 견뎌온 동지는 말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평택공장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던 77일간의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정리해고를 관철시키고, 강성노조를 무너뜨렸다며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우리의 투쟁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77일 동지들은 가진 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며 신자유주의 부자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가공할 폭력에 맞선 노동자 군대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세계를 경악하게 할 정도로 가공할 폭력을 퍼부었습니다. 넉 대의 헬기가 최루탄을 공장이 하얗게 뒤덮일 정도로 퍼부었지만 동지들은 쏟아지는 발암물질을 온 몸으로 맞으며 공장을 지켜냈습니다.
정권과 자본은 국제사면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강력한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 간의 전쟁에서도 허용된다는 식수와 의약품 반입을 막고 전기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은 에어컨 낙숫물을 끓여 먹고, 당장 수술해야 할 상처를 붕대 하나로 버텨냈습니다.
저들은 전기마저 끊어버려 도장공장의 시멘트를 굳게 만들고 생산시설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동지들은 발전기를 고쳐가며 생산시설을 지켜냈습니다.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 회사 관리자들이 총동원된 살인전쟁이 시작되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볼트탄과 대테러 살상무기로 무장한 경찰특공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은 당당하게 맞서 싸웠고, 도장 공장을 지켜내며 노동자 군대의 힘이 무엇인지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산자와 죽은자,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
2646명의 정리해고, 974명의 명단발표 이후 저들은 수 십 년 함께 일한 동료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노-노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도장 공장 안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지 않은 동지들이 밖으로 나가라는 동료들의 권유도 뿌리친 채, 끝까지 함께 싸워 진정한 노동자의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70m 굴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새벽 추위가 몰아치던 5월 초부터 폭풍우와 천둥번개로 굴뚝이 마구 흔들리던 6월, 그리고 살인적인 폭염과 최루탄이 쏟아지던 7~8월까지 86일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나가 되어 싸웠습니다. 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려고 했지만, 정규직 전환배치로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눈감았던 과거를 반성하며, 동지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비정규직 동지들의 손을 끝까지 함께 잡고 싸웠습니다.
저들은 대형 스피커를 밤낮으로 틀어대며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헐뜯고,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했지만 동지들은 도장 공장 옥상에서 손을 흔들고, 풍등과 불꽃을 쏘아 올리며 부끄러운 공장 밖 동지들에게 도리어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77일간 계속했던 교육과 토론으로 동지들은 온 몸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교과서가 글귀가 진실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던 시간들
그러나 공장 밖에 있었던 우리들은 동지들께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지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최루폭탄과 볼트탄, 경찰특공대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오직 ‘함께 살자’는 결의와 동지애로 77일을 지켜왔지만, 공장 밖에서는 그저 초라하고 부끄러운 투쟁밖에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권과 자본은 쌍용차를 넘어 전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겨냥해 전쟁을 벌였고,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인 금속노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으로 국가행정력을 총동원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동지들의 위대한 투쟁에 형식적인 파업, 마지못한 투쟁에 머물렀습니다. 쌍용차 투쟁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핵심 사업장인 현대와 기아차 조합원들을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지도부 사퇴로 쌍용차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현대차와 임금동결 합의로 동지의 뒤통수를 후려친 GM대우차는 망가진 금속노조의 처참한 몰골 그대로였습니다.
쌍용차 동지들의 투쟁은 금속노조 모두의 투쟁이라는 계급적 각성으로 계속되었던 연대파업과 평택 집중투쟁에 수많은 중소사업장 동지들이 헌신적으로 함께 했습니다. 쌍용차 투쟁을 가로막기 위해 제시한 회사의 임금인상안을 거부하고, 휴가 전 타결을 바라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며 연행과 구속을 각오하고 함께 싸운 동지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공장 밖 투쟁은 허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평택에서 공장 앞까지 왕복 마라톤만을 반복하며 맥없이 싸웠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치열하고 치밀하게 싸우지 못했습니다.
교섭이 결렬되고, 도장 공장 살인진압이 임박하면서 공장 앞 농성장이 확대되고, 뒤늦게나마 싸워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마지못한 파업, 형식적인 투쟁은 동지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회사 관리자들이 비아냥거리는 선무방송의 단골메뉴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운동 지도부를 비난하기 전에, 현장의 간부들을 더 끌어 모으고, 조금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조금 더 제대로 싸우지 못한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간부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와 죄스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너진 금속노조 세우고 제2의 노조민주화 운동을
쌍용차 동지들의 위대한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습니다. 무너진 산별노조, 무기력한 단일노조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전국적인 총파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미 확보한 고용보장 합의도 한낱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조합원들은 고용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권과 자본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노동자죽이기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입니다. 쌍용차에서는 미약한 합의사항조차 파기하고, 어용노조를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현대, 기아, GM대우 등 완성차에서는 노사협조주의와 산별노조 탈퇴공작을 통한 사실상의 어용노조 만들기가 계속될 것입니다. 정권과 자본은 아래로부터 금속노조와 민주노조진영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노동법개악을 통해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할 수 있는 세상을 추진할 것입니다.
동지들의 77일간의 점거투쟁은 ‘더 크게 뭉쳐서 더 세게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바로 산별노조를 더욱 강화해 전국적인 총파업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웅적인 쌍용차 동지들의 점거투쟁의 정신은 금속노동자를 넘어 전국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남아 또 다른 위대한 변혁투쟁으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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