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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양보교섭이 투쟁 주도했다?
[쌍용차 투쟁 평가] 일자리나누기전략이 아니라 변혁적 계급전략으로
쌍용차 투쟁이 일단락되자, 인위적인 정리해고 보다는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양보교섭을 통해 노조가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는 평가 주장이 되풀이 되고 있다.
대부분 평가는 쉽게 하면서도 점수에는 매우 인색하다. 이 투쟁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정치적 배경과 원인, 주관적 요인으로 투쟁 연대가 부족했던 이유와 구조보다는 가장 앞장서 투쟁한 사람들의 한계와 결점을 짚어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정리해고투쟁 결국 패배다?
이런 일을 가장 잘 하고 가장 즐겁게 하는 대오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우익들이다. 이들은 정리해고 투쟁은 싸워봤자 노조가 패배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투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배경은 전혀 무시하면서 오로지 노조가 싸워봤자 패배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이를 위해 보수언론들은 노동운동 내부의 연대하지 못한 약점과 결점, 심지어 노노 분열까지 활용해 ‘노조 패배 책임론’을 집요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예컨대, 매일경제는 “투쟁과 이념 중심의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의 패배”라고 주장한다. ‘폭력노동운동’을 근절하기 위해 불법파업 기준을 더 강화하자는 제안을 내세우기도 한다.
우익들은 쌍용차 투쟁을 야기했던 정리해고를 통한 경제위기 노동자 책임전가, 사회보장망 시설의 미비, 정부의 친자본 정책 같은 것들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오로지 투쟁 자체가 이 모든 사건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우파들의 노동 내부의 약점과 결점 비판이 설득력 있게 들릴지라도 결코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자로 만든 주범 무리 중 일부로 우리 운동에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 우파들은 우리 운동이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를 두고 논쟁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노사 모두 양보해야 한다고?
우익들과 좌파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간계급적 평가도 있다. 지나친 투쟁보다는 타협과 협상,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강성’ 노조도 문제고, 친자본적인 정부와 밀어붙이는 자본도 문제라는 식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단 1명의 정리해고도 있을 수 없다’는 노조의 슬로건은 1998년 울산에서, 2001년 부평에서 투쟁 기간 내내 외쳐졌지만, 그리고 이번 쌍용차에서도 바로 엊그제까지 반복해서 강조되었지만, 세 번 모두 지도부는 거짓말쟁이로 내몰려야만 했다."(<프레시안> 기고글)로 말했다.
거짓말이 될까봐 단 한명의 정리해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리해고를 허용하지 않으려면 어떤 실천적 장애물을 넘어야 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정부는 총력전으로 쌍용차투쟁을 대리전 삼았으나 우리 운동은 과연 총력전에 제대로 대응했는가? 그 장애물을 쌍용차지부가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었는가? 금속노조가 그것을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것이 문제인가? 완성차 지부들이 투쟁 확산을 막기 위한 회사의 방해에 말려들었는가? 회사 방해가 먹혔다면 왜 그런가 등의 평가를 통해 우리는 구체적 실천과제를 도출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평가를 하느냐는 어떤 실천적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좌우한다.
그러나 조성재 연구위원의 평가는 전혀 다른 실천적 결과로 이끌어진다. 물론 그는 쌍용차 투쟁의 본질을 “금융과 경쟁의 원리가 노사관계나 사회적 가치를 압도한 데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는 정리해고를 피하는 대신 노동시간의 유연화, 일자리나누기를 노조가 미리 받았다면, 그런 노조의 진정성을 정부와 자본이 받아줬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사 모두 타협적 자세를 취한다면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투쟁이 낳는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투쟁 의지에 대한 그의 무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임금동결 및 무직휴직 등 양보를 통한 일자리나누기’ 주장이 얼마나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의지를 훼손하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강경한 투쟁 보다 자본에게 일부 타협하는 것이 낫다는 중간계급 이데올로기는 노사 ‘공생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중시할 평가 원칙은 노동자들이 자발적 투쟁의 힘을 통해 자신감, 계급의식을 발전시켰는가다.
일부 초좌익 좌파들은 반대 급부로 투쟁 그 자체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투쟁을 낳은 조건과 환경은 동일한 자본주의 체제라 할지라도 늘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투쟁이든 늘 같은 추상적 평가만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변증법적 평가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투쟁진리는 구체화될 수 있다.
평가도 제대로 해야 배운다
그렇지만 일자리나누기 전략 주창자들의 주장 근저에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성장을 위한 변혁적 계급전략이냐 아니냐라는 전략의 차이 때문에 생겨났다.
완강하고 영웅적 투쟁을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주객관적 조건 때문에 쌍용차지부처럼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을 우리는 양보교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투쟁의 성패에 따른 양보가 아니라 일관된 양보교섭을 통해 노사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타협을 통해 개혁이 가능하다는 개량주의 전략이다.
이미 금속노조 내에서 ‘공생협약’으로 양보교섭을 주장했다가 철회했던 조건준 정책국장은 여전히 일자리나누기 전략의 유효성을 주장한다. 그는 “‘일자리나누기’는 양보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주도하는 효과만큼은 낼 수 있었다. 일자리나누기도 팽개치고 급기야 ‘난파선론’을 들이대는 노동부장관의 한가한 얘기를 틀어막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노조에게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전략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매일노동뉴스>, 8월7일자)
이는 계급 전략에 기초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을 통해 자신감을 확충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으로써 경험을 축적하고 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다르다. 조건준 국장은 자본도 양보를 통해 대립적 노사관계를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합리적 선택을 통해 사람을 자르지 않고도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면 비합리적 선택의 피해자들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는 “오직 노동자들의 무기는 투쟁일 뿐이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며 “이 때의 투쟁이란 오직 ‘물리적 힘’일 뿐이다. 투쟁에 필요한 이슈와 명분을 먼저 틀어쥐는 정치적 능력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고 했다.
물리적 투쟁과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칼같이 분리하는 것도 중간계급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다. 이데올로기와 교육투쟁의 목적이 노동자들을 자발적인 투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으려면 투쟁 경험과 이데올로기투쟁이 결합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투쟁으로 폭로한 자본의 만행
쌍용차지부는 옥쇄파업의 완강한 물리적 지속 뿐 아니라 경찰의 발암물질 유해성과 잔인성, 회사의 무능함 등을 시시때때로 폭로하고 내부적으로는 토론과 논쟁을 통한 민주주의를 통한 의사 결정 등으로 투쟁 대오를 강화했다.
투쟁을 오직 물리적 싸움으로 협소화하고 이데올로기 투쟁을 일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은 소수 엘리트 지배자와 자본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쌍용차노동자들은 대체로 자본에 타협하지 않는 노동 이데올로기 개발, 토론과 논쟁을 통한 의사결정과 단호한 행동통일 등으로 77일간을 버텨왔다.
자본에 맞선 노동의 새로운 전략은 자본을 따라잡고 자본을 배우고, 그래서 자본과 타협하는 전략이 아니라 새롭고 독립적인 계급적 전략에서 출발해야 한다. 쌍용차 투쟁은 여전히 변혁적 계급전략에 기반한 투쟁의 확산과 지속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협을 통한 양보교섭이 이뤄졌다면, 일부 엘리트주의적 전문가들은 타협전략으로 승리를 맛볼지언정 노동자들은 투쟁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지배자와 중간계급에 의존하는 하향된 계급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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