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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산별
패배주의 타협주의 넘어야
[옥중편지] 쌍용차 투쟁 평가의 방향 … 살인진압을 게임으로 여기는 정권
이곳에 들어온 지가 엊그제 같았었는데 벌써 한 달 여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비 한 점 없이 내리쬐던 직사광선 탓에 팔이 마치 토시를 낀 듯이 새까맣게 그을렀었는데, 햇빛을 보기 어려운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검은 피부를 흔적으로만 남은 채 자취를 감춰가고 있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깥에 있을 때는 술이다 뭐다 해서 몸을 챙기지 못했고, 쌍용차에 있을 때는 씻는 것, 먹을 것 등에 모두 부족해서 몸이 많이 부실해졌나 싶었는데 이곳에 들어와서는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통해 오히려 건강을 많이 회복된 듯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조사가 채 끝나지 않아서 어느 것 하나 집중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조사도 끝나고 해서 학습과 생활을 조금은 더 계획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간간이 실려 있는 쌍용차 투쟁과 관련된 평가들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포함하여 많은 노동, 사회, 정치 단체들이 투쟁에 결합하였던 만큼이나 적극적인 평가를 조직하는 것 역시 이후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평가의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와 조건에 따라 그리고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몇 가지의 관점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쌍용차 투쟁은 패배한 투쟁인가?
첫째, 이 투쟁에 대하여 한 단면만을 바라보면서 ‘졌다’ 또는 ‘패배한 투쟁’이라고 규정하는 패배주의적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은 8월 5일 공권력에 밀려 도장공장으로 후퇴한 이후 8월 6일 회사측과의 협상 타결에 의해 투쟁은 종료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쌍용차 투쟁은 종결된 것입니까? 회사와 경찰이 기만적인 협상안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간부를 포함하여 6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구속되어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투쟁했던 조합원들이 아래로부터 결의하여 ‘정원투’를 조직해 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쌍용차 투쟁을 평가하는데 있어 핵심을 구조조정 저지라고 하는 전쟁의 관점에서 77일 전투를 바라보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는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던 사례가 적잖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77일간의 옥쇄파업을 군사적 측면에서의 전투로만 바라보지 말고 이 투쟁이 쌍용차 조합원과 민주노조 운동에 미친 영향,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한 저지선의 형성,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대한 전 국민적인 여론화 등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전쟁의 관점을 명확히 해야만 쌍용차 투쟁이 끝난 투쟁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분쇄하기 위하여 어떤 전망을 갖고서 다시 투쟁의 불씨를 살려야 할 지에 대한 계획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투쟁만 하다가 협상으로 끝날 시기를 놓쳤는가?
둘째, 협상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투쟁으로 일관한 나머지 시기를 놓쳤다고 하는 타협주의적 시각입니다.
저는 얼마 전 신문에서 민주노총의 모 간부가 이와 유사한 얘기를 했었다는 기사를 보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조건으로 인하여 과정 전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중간에 대정부 협상안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협상안에 8월 6일 공권력에 밀려서 회사와 체결한 협상안보다 나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대정부 협상안에 대하여 농성 투쟁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압도적으로 거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합원들의 정서는 투쟁다운 투쟁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조조정이 철회되지 않는 협상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조합원들이 그 안을 거부하였던 핵심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 안을 받는 순간 ‘민주노조 운동의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이 협상안을 압도적으로 거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협상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중을 주체’로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 대중을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지극히 관료적이며 타협적인 발상이라고 거듭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 대공분실이 지금은 보안수사대로
마지막으로 저는 경찰이 이 투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20여년 전에 ‘안양지역 민주노동자 일동’ 사건이라는 조직 사건으로 구속되어 당시 악명이 높았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던 바 있습니다.
이들의 일관된 시각은 온갖 종류의 미행과 전화 도청, 감시 등 일련의 행위가 노동운동 세력과 정당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사고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사과정에서 일관된 문구는 ‘게임에서 졌으면 이제 룰에 따라 모든 행위를 자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보안수사대로 바뀌고 또한 수사관들은 악명 높았던 이근안 대신에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살인진압을 ‘게임’ 정도로 여기는 이명박 정권
우리 조합원들은 목숨을 걸고 생존을 위한 옥쇄투쟁으로 전개했지만 이들이 진압 작전에 임했던 것은 하나의 ‘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고무총, 레이저건, 최루액 등을 무참하게 살포하고 다시금 조합원들을 조사하면서 온갖 협박을 가하였기 때문에 결국 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극단적이 행동을 하였음에도 이들은 ‘게임의 룰’에 따른 정당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습니다. 아무튼 아직도 쌍용차 구조조정 저지 투쟁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궁극적 승리를 위해 금속노조가 어떻게 지원과 결합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동지들의 힘찬 건투를 바라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9월 7일 수원구치소 김혁
※ 이 글은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인 김 혁 동지가 사무처에 보내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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