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콜텍,천일투쟁을 맞이하며(옮김)
작성자 콜트빨간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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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콜텍, 천일투쟁을 맞이하며 2009-10-20 10시10분 최명희 2006년 각지회의 축하와 염려 속에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가 탄생되었지요. 그동안 주장하지 못했던 정당한 우리 콜텍노동자의 권리를 찾아가며 잃어버렸던 우리의 임금까지 되찾아가며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지 불과 일 년도 안 되어 2007년 04월 09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지만 너무나 당황스런 일을 맞았지요. 노조혐오증이 있는 박영호사장은 일방적 공장폐쇄를 단행했습니다. 무노조경영이라는 헛된 망상을 위하여 자식에게는 노조가 있는 회사는 절대로 물려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다녔답니다.
공장 폐업에 맞서 투쟁끈을 묶는 조합원들 공장출입문 앞에는 2007년 7월9일까지는 휴업이고 7월9일 이후에는 폐업이니 퇴직원을 쓰고 사측이 정한임금을 줄 테니 받아가라는 것이고 만일 퇴직원을 안 쓸 경우는 다른 회사를 취업하는데도 불편한 사항이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고 쓰여 있던 군요. 공지 아닌 공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는 나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옳지 않은 일을 자행하고 있는 자본가의 횡포에 그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대충지부 각 지회에서 매주수요일 계룡시에서 거리행진을 함께하여 주었고, 계룡시청 앞에서 대규모의 집회를 수차례를 하였습니다. 추운겨울 본사 건물 앞에서 천막을 치고 오들 오들 떨면서 자고일어나면 아침에 그 동네 파출소경찰이 밤새 얼어 죽지 않았나? 살피러오는 일도 있었답니다. 송전탑에 지회장을 올려 보내놓고 설움에 숨죽여 울었던 기억. 본사를 점거하기위해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긴장감 점거 중에 경찰특공대가 건물 집기들을 부수고 들어와 놀랬던 기억들…….
대전노동청장과의 면담을 위해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던 콜텍 조합원들 난 그저 집에서 살림이나 하다가 아이들이 조금 커 학비와 생활비를 벌자고 나왔던 기타공장에서 비인간적인대접을 받으며 굴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돈만 벌자고 다짐했던 40넘은 이 아줌마는 노조가 생기면서 머릿속에 작지만 소중한 많은 계획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조합이 있는 회사는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없다는 박영호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납득이 안 갔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투쟁을 하다보면 괜히 노조를 만들어 잘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뭔지 하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십시일반으로 투쟁기금을 거둬주시는 지역동지의 노동현장에서 정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공농성 뜨거운 여름에 불앞에서 일하시는 나이 드신 분을 만나 손잡고 어려운 투쟁 힘내라고 말씀해 주실 때는 가슴에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았고 본사 점거하여 건물 안에 갇혀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뜨거운 지역동지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기륭전자 1000일을 함께하면서 저렇게 까지 오래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 긴 시간을 어찌 저렇게 버텼나 생각했는데 어느 덧 우리 콜텍 투쟁이 1000일이 되었네요. 천일문화제를 코앞에 두고 많은 생각들이 오갑니다. 박영호사장이 10월6일 국회에서 환경노동부의원들 앞에 증인으로 채택되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박영호사장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출석을 했을 때 의원들의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독일원정투쟁에 나섰던 콜트-콜텍 노조 해고무효소송 고등법원심리 중 판사는 직장폐쇄를 해야할만한 이유보다는 정리해고요건을 증명하라고 하더군요. 해고회피의 노력을 했는지 정리해고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에 정당한 대상이었는지 추궁했습니다. 2차 심리 중 사측은 증거자료조차 내놓지 못했습니다. 지리멸렬한 싸움 중 정말 한줄기의 소낙비처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11월 말일쯤이면 고등법원판결이 나온답니다. 오랜 투쟁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멈추지 못하고 정당하고 바른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투쟁은 해야겠고 생활도 해야겠고 대오도 흩어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각오로 장류사업을 2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장투 사업장인 콜텍조합원들이 지금 기타를 만들던 섬세한 손으로 흙과 호미를 만지며 이젠 고추장도 담아봅니다 아주 성실하게 일해서 정성으로 땀 흘려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것은 오랜 투쟁 기간 동안 더욱 단단하게 뭉쳐질 초석의 힘이 될 것입니다.
콜텍 투쟁 1년 문화제에서 지속적인 지역연대의 든든한 울타리가 없었다면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면 결코 천일까지 지속된 질긴 싸움은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콜텍지회만의 싸움이 아닌 노동자전체의 숙제로 문제를 인식하고 같이 함께해온 많은 지역동지의 여러분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하고 콜텍동지 여러분도 감사드립니다. 노조를 몰랐던 그 옛날에는 구호한번 외치는 것이 그리도 쑥스러웠지만 더 힘차게 강하게 구호를 외쳐보고 싶습니다. 강구한 연대투쟁 졸렬한 자본가 모두 다 때려잡자!
공장 폐업에 맞서 투쟁끈을 묶는 조합원들 공장출입문 앞에는 2007년 7월9일까지는 휴업이고 7월9일 이후에는 폐업이니 퇴직원을 쓰고 사측이 정한임금을 줄 테니 받아가라는 것이고 만일 퇴직원을 안 쓸 경우는 다른 회사를 취업하는데도 불편한 사항이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고 쓰여 있던 군요. 공지 아닌 공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는 나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옳지 않은 일을 자행하고 있는 자본가의 횡포에 그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대충지부 각 지회에서 매주수요일 계룡시에서 거리행진을 함께하여 주었고, 계룡시청 앞에서 대규모의 집회를 수차례를 하였습니다. 추운겨울 본사 건물 앞에서 천막을 치고 오들 오들 떨면서 자고일어나면 아침에 그 동네 파출소경찰이 밤새 얼어 죽지 않았나? 살피러오는 일도 있었답니다. 송전탑에 지회장을 올려 보내놓고 설움에 숨죽여 울었던 기억. 본사를 점거하기위해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긴장감 점거 중에 경찰특공대가 건물 집기들을 부수고 들어와 놀랬던 기억들…….
대전노동청장과의 면담을 위해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던 콜텍 조합원들 난 그저 집에서 살림이나 하다가 아이들이 조금 커 학비와 생활비를 벌자고 나왔던 기타공장에서 비인간적인대접을 받으며 굴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돈만 벌자고 다짐했던 40넘은 이 아줌마는 노조가 생기면서 머릿속에 작지만 소중한 많은 계획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조합이 있는 회사는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없다는 박영호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납득이 안 갔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투쟁을 하다보면 괜히 노조를 만들어 잘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뭔지 하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십시일반으로 투쟁기금을 거둬주시는 지역동지의 노동현장에서 정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공농성 뜨거운 여름에 불앞에서 일하시는 나이 드신 분을 만나 손잡고 어려운 투쟁 힘내라고 말씀해 주실 때는 가슴에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았고 본사 점거하여 건물 안에 갇혀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뜨거운 지역동지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기륭전자 1000일을 함께하면서 저렇게 까지 오래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 긴 시간을 어찌 저렇게 버텼나 생각했는데 어느 덧 우리 콜텍 투쟁이 1000일이 되었네요. 천일문화제를 코앞에 두고 많은 생각들이 오갑니다. 박영호사장이 10월6일 국회에서 환경노동부의원들 앞에 증인으로 채택되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박영호사장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출석을 했을 때 의원들의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독일원정투쟁에 나섰던 콜트-콜텍 노조 해고무효소송 고등법원심리 중 판사는 직장폐쇄를 해야할만한 이유보다는 정리해고요건을 증명하라고 하더군요. 해고회피의 노력을 했는지 정리해고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에 정당한 대상이었는지 추궁했습니다. 2차 심리 중 사측은 증거자료조차 내놓지 못했습니다. 지리멸렬한 싸움 중 정말 한줄기의 소낙비처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11월 말일쯤이면 고등법원판결이 나온답니다. 오랜 투쟁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멈추지 못하고 정당하고 바른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투쟁은 해야겠고 생활도 해야겠고 대오도 흩어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각오로 장류사업을 2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장투 사업장인 콜텍조합원들이 지금 기타를 만들던 섬세한 손으로 흙과 호미를 만지며 이젠 고추장도 담아봅니다 아주 성실하게 일해서 정성으로 땀 흘려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것은 오랜 투쟁 기간 동안 더욱 단단하게 뭉쳐질 초석의 힘이 될 것입니다.
콜텍 투쟁 1년 문화제에서 지속적인 지역연대의 든든한 울타리가 없었다면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면 결코 천일까지 지속된 질긴 싸움은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콜텍지회만의 싸움이 아닌 노동자전체의 숙제로 문제를 인식하고 같이 함께해온 많은 지역동지의 여러분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하고 콜텍동지 여러분도 감사드립니다. 노조를 몰랐던 그 옛날에는 구호한번 외치는 것이 그리도 쑥스러웠지만 더 힘차게 강하게 구호를 외쳐보고 싶습니다. 강구한 연대투쟁 졸렬한 자본가 모두 다 때려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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