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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증언 (옮김)
작성자 콜트빨간모자
댓글 0건 조회 3,132회 작성일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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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월 2호 특집기사 ③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증언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엄청 시끄럽고 분진 가루도 뿌옇게 날려요. 천식에, 난청에 더구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 다리가 퉁퉁 붓고…. 기타 몸체를 다듬는 기계가 있거든요. 손에 잡고 하는 건데 그게 진동이 심해서, 오래 쓰면 손바닥에 티눈이 생겨요. 너무 아프죠. 수술을 해야 하는데 산재로 인정도 안 해 주더라고요. 기타를 만드는 공정들이 쭉 있는데, 앞 공정이 끝나지 않으면 뒤 공정을 진행할 수가 없는 식이거든요. 그걸 못 이으면 8시 출근인데 6시 반에도 그냥 나오라고 해요. 아침부터 아무런 수당 없이 그냥 일하는 거죠. 그리고 밤에 일이 남으면 그대로 연장 근무를 하는 거고. 어떠한 수당도 없어요.”

“관리자들이 아침에 출근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 첫인사로 엉덩이를 툭툭 치고 지나가요. 예쁜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회식 가자 막 그러면서 치근거리는데 미운 여성 노동자들한테는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게끔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요. "돌림빵"이라는 게 있어요. 공장이 다섯 개가 있는데 한 공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다른 공장으로 배치해 버리는 거죠. 그러니 사람 돌아버리는 거죠.”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엔 오전·오후 15분씩 쉬는 시간도 없었죠.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욕을 먹었어요. 한번은 25년간 칠 작업을 한 노동자가 모세혈관기관지염으로 쓰러졌는데 회사에서는 병원까지 쫓아가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1992년도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제가 젤 나이가 적었어요. 서른다섯에 들어갔거든요. 근데 여덟시 반에 일을 해야 하는데 일곱시 이십분만 되면 회사 다 와요. 막 일을 해요. 다 이렇게 하나 보다. 그게 언니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하니까, 따라서 저도 습관이 돼서 몸이 부서지는 줄 모르고 일만 했어요.”

“첨에 입사하여 힘든 노동에 지쳐 세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공장에 빠지면 잘릴까봐 병원에서 입원을 하라고 해도 뿌리치고 새벽에 응급실에서 출근한 적도 있었어요. 결국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자신의 오른손 손목을 보여주며) 그래서 저도 여기 삐어 나온 것 있잖아요. 일을 안 하니까 좀 줄어들었어요. 관절이, (나무를 파내는 시늉을 하며) 이걸 많이 했거든요. 톱질 칼로 가지고 이렇게 나무를 따내는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관절을 너무 많이 써가지고 여기서 관절 안에서 액이 나와 가지고 그랬대요. 이걸 (액을) 빼내도 계속 나오고, 욱신거리고 아파요.”

“똑같은 일을 해도 누구는 천 원을 올려주고 누구는 오백 원을 올려주고 그래요. 마음에 드는 사람 골라 제멋대로 임금을 조정을 하고, 임금 인상되면 옆 사람에게 말하지 마라 그래요. 팀별로 조회를 서잖아요. 꼭 말끝에 입조심해라, 말조심해라 그런 거 되게 많이 시켰어요. 동료들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즐겁게 웃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서로 감정적으로… 그런 분위기였어요. 진짜 생지옥이었죠.”

“은*에서 관리자를 만났는데 인사를 해야 했는데 인사를 안 했대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언니한테 막무가내로 너무 함부로 하는 거예요. 일을 너무도 잘하고 꼼꼼한 언니예요. 뭐 일을 이렇게 했어,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는 그 언니를 다른 데로 배치전환을 시켰어요. 또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로 또 배치전환 시키고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언니가 맨 날 울고 했는데 인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못 이겨서 나갔어요. 언니가 퇴사를 했어요. 그때 언니가 집에 있으면서… 만약에 회사에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공장 그만 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언니가 저 (공장) 뒷산에서 콜트 조끼를 입고… 이 조끼를 입고… 이것을 입고 목을 매서 자살을 했어요. 이 조끼, 콜트라고 적혀있는….”

“2005년부터 자꾸만 회사는 적자고 힘들다고 했어요. 이 말이 사실인 줄 알고 저희 노동자들은 정말 자재도 아끼고 시간외 수당을 쳐주지 않아도 참고 일했어요. 나중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알아보니 100억 대의 이익을 남기는 알짜기업이었어요. 참고 눈물 흘리며 일을 했는데요.”

“버티고 버티고 안 쓰고 그러면 반장이 와가지고 사물함에다 사직서를 집어넣고 그랬어요. 일하고 있는데도 불러다가 사직서를 쓰라고 하고. 견디다 견디다 못해가지고 그럼 사직서를 쓸 테니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위로금이라도 좀 달라고 사정을 했어요.”

“우리가 노동법을 너무 모르고 무지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고용보험 서류 안 해주면 우리는 실업급여를 못 받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고용보험 그거라도 타주게 할라니까 지금 사직서를 안 쓰면 고용보험도 못 타게 하겠다, 이런 식으로 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용보험이라도 타겠다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쓰고 나간 거예요.”

“2006년 노조가 만들어지고 12년 만에 가장 높은 임금인상이 되었다. 높은 임금인상의 결과로 우미자 씨가 받는 일당이 이만오천칠백 원이다. 2007년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이만칠천팔백사십 원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고, 2006년 최저임금 시급보다 백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얻은 급여가 최저임금이다.”

콜트, 콜트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 경과
 
- 콜트공장, 콜텍공장에서 산업재해 환자 다수 발생.
- 2007년 콜트공장에 대한 한국 정부와 검찰 합동 사업장 조사에서 27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적발
- 2007년 콜트공장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산업재해 환자 5명 정리해고 강행
- 2007년 3월 콜트공장에 대한 일방적인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진행
- 2007년 4월 6일 콜텍공장에서 합법적인 집회 참가를 이유로 노동조합원 4인을 징계
- 2007년 4월 9일 새벽 6시. 콜텍공장을 기습적으로 폐업함
- 2007년 7월 콜텍 노동자들 불법 폐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콜텍공장 점거 투쟁 시작
- 2007년 12월 11일. 콜트공장 노동자 이동호 씨가 분신
- 2007년 12월 콜트, 콜텍 노동자들 본사 점거 투쟁 진행
- 2008년 5월 콜트, 콜텍 노동자들 본사 앞 천막 농성 진행
- 2008년 10월 15일 15만KW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30일간의 목숨을 건 고공 단식농성 진행. 본사 점거농성 동시에 진행
- 2008년 10월 예술인, 음악인들이 함께하는 콜트, 콜텍 노동자 지지 콘서트 진행됨. 이를 계기로 다양한 대중 캠페인이 진행됨
- 2009년 4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뮤직 메세 원정 투쟁 진행
- 2009년 8월 11일 콜트 노동자 서울행정고등법원 승소. 부당한 정리해고 확인 됨.
- 2009년 9월 3일 콜트 방종운 지회장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사 재판 승소. 회사 측의 폐업에 따른 해고가 무효임이 확인 됨.
- 2009년 9월 콜트, 콜텍 노동자를 지지하는 음악인들이 모던 록 페스티발 개최
- 2009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콜트, 콜텍에 대한 국정감사 진행. 박영호 사장 국회 증인 채택하였으나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
- 2009년 11월 일본 요코하마 악기 박람회 원정 투쟁 진행 예정
* 법률적으로 부당한 폐업, 정리해고 등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은 지금도 법제도를 무시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폭력행위를 반복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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