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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성+정치성=한국형산별
작성자 세계화
댓글 0건 조회 2,974회 작성일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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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성+정치성=한국형산별


  [특별기획-노동운동 길을 묻다①-정병기 영남대교수] 자본 공세에 항복한 계급해체론

  교섭구조 체계화 …노동자 스스로 정치운동?산별연대 넘어 국제연대로


산별노조운동의 답보로 노동운동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변혁산별>은 ‘노동운동 길을 묻다’는 특집을 마련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이탈리아에서 노동자로 현장활동을 하면서 정치학을 공부한 영남대 정병기 교수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산별운동의 대안을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국의 노조 활동가들은 독일금속노조 등 유럽 산별노조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와 유럽 산별노조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우리 노조도 노동운동의 역사가 깊은 서구의 노조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모나 조직 및 성격에서 아직은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서구의 노조를 닮아야 더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두가 장단점이 있겠죠.


  우선 서구의 장점과 먼저 비교해 보면 서구의 산별노조들은 전국적 조직이고 중앙의 권한이 매우 막강합니다. 반면 우리는 아직 완성 4사 중심의 조직이고 기업별노조의 전통도 제대로 벗지 못한 상태로 보입니다. 물론 조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지역지부로 전환하면 충분히 해결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전국적 조직과 노조의 강력한 지도력이 거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운동 초기의 혁명적 열기와 투쟁이 고스란히 산별노조 형성으로 이어진 것이 서구의 역사입니다. 산별전환을 전후한 우리 금속노조의 경우 이 역사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봅니다. 반면 기업별 노조의 역사가 거꾸로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노조의 권한은 막강해도 현장성은 약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산별노조는 사용자단체와 사업장 밖에서 포괄적 협상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업장 내부 조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장 내부에 진입해 현장력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기업별노조의 역사를 거치면서 주요 활동무대가 사업장 내부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충분히 전환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잘 활용하여 계승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금속노조가 공장 안에 갇혀 있는 기업별 의식을 공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연대와 투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역지부전환을 추진해왔지만 답보하고 있고, 완성차 조합원들의 연대와 투쟁 공간으로 지역지부 전환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지부 전환 문제가 산별노조의 중요한 쟁점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조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서구 사람들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붉은 띠를 동여매고 공장 안에 모여 집회하는 것을 보고 공장점령을 감행한 혁명적 파업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서구 노조들은 사업장 내 조직이 아니라 사업장 밖의 노동자 단체이므로 사유지인 사업장 안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시위와 파업 때 수십만,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거리와 광장에 운집하는 것은 우리가 마찬가지로 잘못 알고 있듯이 공장을 뛰쳐나와 거리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주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거꾸로 우리는 기업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공장 밖으로 진출하면 집시법, 제3자개입 금지법 등에 의해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과연 조합원조합주의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급해체까지 하자고요? 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계급이 제대로 형성조차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계급투쟁으로 결합시켜나가는 집단적 계급 말입니다. 따라서 계급해체는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아직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항복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화두는 여전히 계급해체가 아니라 계급형성이고 그 방법론입니다. 조직 노동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산별노조의 발전은 특히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요인 외에도 우리는 단협투쟁이 사회적ㆍ정치적 투쟁과 연결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한 요인인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임금단협투쟁들이 경찰투입에 의해 자동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어디까지나 임금단협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의 문제가 임금수준에 매우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정치적 결정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이와 달리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노조가 제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임금단협 문제로 인식하면서 말이죠.


  산별노조는 현장성을 가짐과 동시에 정치성과 사회적 투쟁성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랜 기업별 노조의 경험을 가진 우리로서는 지역지부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만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더 고민하고 실천해보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노동조합이 중요하게 관심을 갖는 주제는 고용, 임금, 노동과정인데, 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정치적, 제도적 장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투쟁의 성과로 지킨 고용, 임금, 노동과정의 안정성이 한미FTA나 비정규법안 등 직접 자기 사업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쟁점이면 무관심한 경향(=노동조합주의)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쟁점들이 노조와 무관하다는 자본의 의도적 여론화 작업도 있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임금, 고용 등에 집착하는 노동자들의 낮은 의식에 실망해 ‘계급해체’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산별노조가 노동조합주의를 극복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노동조합 중심주의나 조합원 조합주의를 말하시는 것 같군요. 한국 노동운동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저도 일반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한 번 뒤집어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요.


  첫째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과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더 크게 걱정할 정도로 조합원조합주의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 노동조합도 한 때는 메이데이의 기원을 만들고 인터내셔널의 핵심주체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른바 ‘빵과 버터 조합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임금과 노동조건에만 매달리고 심지어 조합원들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비판 받습니다. 영국 노조는 처음부터 노사간 조화를 꾀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주요 목표로 했으며, 독일 노조도 국가조합주의에 경도된 복지국가 지향적으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둘째로는 과연 조합원조합주의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급해체까지 하자고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계급해체는 할래야 할 수 없을 뿐더러 계급상황에 있다고 해서 그러한 즉자적 계급이 모두 계급의식을 갖춘 대자적 계급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대중의 다수인 노동자들의 다수가 혁명적이라면 이미 혁명은 이루어졌겠지요. 아직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혁명적 노동자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당연히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본주의 극복을 외치는 것이기도 하고요. 태어난 혁명가는 없습니다. 길러진 혁명가가 있을 뿐이지요. 길러진다는 것은 일상적인 문제를 두고 일상적인 투쟁이 생겨나고 이를 겪어가면서 일상이 사회와 정치 및 경제 전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이구나!’ 하고 인식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계급이 제대로 형성조차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계급투쟁으로 결합시켜나가는 집단적 계급 말입니다. 따라서 계급해체는 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아직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항복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화두는 여전히 계급해체가 아니라 계급형성이고 그 방법론입니다. 조직 노동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산별노조의 발전은 특히 그렇다고 봅니다.


  그동안 산별교섭 형태로 중앙교섭은 전 사회적 방향을 가진 단일한 투쟁을 위한 교섭구조이자 방법?수단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금속노조 정갑득 집행부가 잇따라 15만 중앙교섭을 실패한 후 새롭게 등장한 6기인 박유기 집행부는 업종 강화를 통한 중앙차원의 교섭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업종별 교섭 강화가 자동차 조합원을 중심으로 사회정치적 투쟁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과 완성차지부들의 ‘기업별노조의식’(=노동조합주의)에 타협한 결과라는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중앙교섭이냐 업종교섭이냐 등 교섭방식에 대한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섭방식의 문제는 산업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봅니다. 무엇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는 전략적 혹은 전술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만 교섭구조를 체계화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교섭구조를 체계화했는데, 대단히 유연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시까지 진행되어온 교섭행태들을 취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권익 대변을 전국적 수준에서까지 제도화했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국적, 전산업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 정책을 두고는 전국사용자단체 및 정부와 전국중앙교섭을 벌이고, 산별 및 업종별 혹은 지역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산별노조 중앙이나 노총 지역지부가 동일 수준의 정부 혹은 사용자단체와 교섭을 하며, 기업별 차원에서는 노조기업지부가 당해기업과 교섭을 합니다. 다만 하위교섭은 상위교섭의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교섭구조를 체계화하여 협상의 범주를 구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는 산별노조의 전망과 연결된 전략적 과제인데 비정규 사업을 펼치는데 가장 걸림돌이 무엇이고 이를 극복할 제안이 있으시다면?


  정규직의 우월의식을 버린다면 비정규직의 양산은 오히려 조합원 충원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미취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지 않고 실업과 동시에 조합원자격을 박탈해왔습니다. 따라서 시간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비정규직들이 산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서구의 흐름을 보면 이른바 ‘까드르 노조’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공산계 노조를 비롯한 선진적 노조들이 임금격차 감소를 주요 목표로 해왔고 이것이 일정하게 성공하자 임금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이 탈퇴해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또 그것을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서구에서도 비정규직화가 점차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요. 그래서 기존 노조들은 까드르 노조 경향을 막기보다는 비정규직과 실업자 문제에 더 신경을 쓰면서 이들이 중심이 되어 까드르 노조와는 사안별 연대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반대로 기존 노조들이 까드르 노조처럼 변하는 상황입니다. 기업별노조와 취업자 중심의 조직화에 따른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체교섭구조의 체계화를 통해 특정 사업장이나 업종에서는 상위교섭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더 좋은 노동조건을 얻어낼 수 있도록 허용하되 산별노조 중앙은 비정규직들의 조직화와 권익대변에 더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서구 산별노조 중에서 현장활동가들의 현장강화 활동 중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면


  서구 노동자들과 노조들도 갈수록 개량화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말씀드린 것처럼 오히려 노동운동이 확산되고 계급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항상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소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개량화가 극단적으로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말 때가 왔을 때 다시금 계급동원이 가능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SUD, 독일의 비판적노조활동가모임, 이탈리아의 에쎄레신다카토가 대표적인 조직입니다. SUD는 체신노조에서 시작하여 노조연합으로까지 발전한 노조조직의 형태이고, 비판적노조활동가모임은 각 노조 내부에서 비판적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들의 모임으로 비상설적 모임인 반면, 이탈리아의 에쎄레신다카토는 공산계 금속노조(CGIL-FIOM) 내부의 활동가조직으로서 공산계 노총(CGIL) 차원으로 활동을 넓힌 노조 내부 상설조직입니다. 그밖에도 초국적 콘체른 내부에서 역시 초국적 평의회를 통해 국제연대 활동을 벌이는 사례도 종종 보고되곤 합니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국제적 모임으로서 비노조활동가들의 참여도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국제네트워크인 TIE (Transnationals Information Exchange: 노동운동가 국제대회)라는 조직도 있습니다. 독일 활동가모임과 TIE는 우리나라 1996/97 총파업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했었죠.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는 의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정당과 노조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정당정치 이후 어떠한 정치가 도래할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단체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 단체 스스로 사회에서, 거리에서, 문화현장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의회가 존속한다고 할지라도 의회정치에서도 정당을 대체해 나갈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화두는 노동자들과 노동자단체 스스로 장악해 들어가야 합니다.”


  서구에서는 관료적 산별노조와 이를 사다리 삼아 진출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연결고리가 운동을 타락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입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정치세력화는 현장에선 논의조차 많이 사라졌습니다. 변혁적, 독립적, 전투적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는 의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정당이 정치의 핵심 행위자일 때만 주요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서서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 전공이 정당론인데, 정당론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전공 대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19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 초에 짜여진 정당대의정치를 위협하는 요소는 이미 충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역사는 압축적으로 발전하지만 단계를 생략하지는 않는다고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후발 국가로서 압축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그렇게 오래도록 가장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정당과 노조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정당정치 이후 어떠한 정치가 도래할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단체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 단체 스스로 사회에서, 거리에서, 문화현장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의회가 존속한다고 할지라도 의회정치에서도 정당을 대체해 나갈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화두는 노동자들과 노동자단체 스스로 장악해 들어가야 합니다.


  이와는 별도로 노조 내부의 관료주의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점은 이미 맑스와 레닌의 활동 시기에도 지적된 바 있고 현대에 와서는 68혁명운동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노조의 관료주의 문제를 외부의 권력으로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노조는 대중조직이자 토대조직이므로 노조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노조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이 관료주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도 큽니다. 미헬스가 ‘철칙’이라고까지 한 이 문제는 우리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입니다.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할 조직과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맥락에서 조금 벗어나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산별노조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구의 경우는 산별노조의 역사가 길어 오히려 그 단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최근 대산별로 전화하면서 기존의 16개 노조가 8개로 대폭 줄어들었는데, 이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지도부와 핵심간부들이 주로 찬성하는 대산별로 결정이 났던 것이지요. 반면 비판적 활동가들은 산별을 넘나드는 노동자연대를 강조했고, 이점은 서구 노동운동에 대부분 공통적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산별노조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관료주의 외에도 노총의 권한이 약해지고 현장성이 상실되어 간다는 것이지요. 아직 우리나라에 적용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단점을 미리부터 피해가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토대조직이기는 하지만 조합원조합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익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출발은 당연히 사용자에 맞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모순의 핵심을 이루면서 그 모순의 원천적이고 직접적인 억압을 받는 계급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익 대변은 곧 인간 자체의 해방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산별연대를 넘어 국제연대로 이어지는 노동자연대는 이러한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변혁산별>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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