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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명확한 문제제기에 아쉬운 점들
<변혁산별>80호 "노동운동 길을 묻다"를 읽고 … 노조관료주의 병폐 심각
"노동운동의 길을 묻다"라는 <변혁산별>의 특별기획을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 보았다. 그것은 정병기 교수의 인터뷰 내용 이전에, 이러한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금 현재 민주노조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활동가들이라면 다른 활동을 다 접더라도 왜 우리 민주노조운동이 이 지경까지 왔고, 어떠한 전략적 방향을 가지고 실천을 해야 민주노조운동을 살리고 노동해방을 앞당길 수 있을지 광범위하게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회도 중요하고 회의도 중요하고 현장의 일상활동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상황은 기존의 활동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토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회를 할 때도, 회의를 할 때도, 현장의 일상활동을 할 때도, 이러한 주제로 동지들과 토론하고,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명확한 문제점 지적, 부족한 실천
나는 이번 정병기 교수의 인터뷰 글을 보면서 전체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 산별노조운동의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지역지부로 재편하는 것의 중요성, 관료주의의 문제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 교섭의 문제, 현상활동의 중요성 등 우리가 핵심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주제들을 잘 선택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 강조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몇가지 문제의식만 간단히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지역지부로의 전환은 옳지만, 구체적인 형태는 더 고민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자칫 금속노조에서 실천적으로 핵심적인 문제가 되어 있는 기업지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껴가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지역지부로의 전환은 명확한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둘째, 노동조합주의 경향에 대한 정병기 교수의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의 기운이 쇠퇴해있는 미국의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주의가 크게 걱정할 정도냐고 반문하는 것은 매우 안이한 태도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에서는 이미 자판기 노조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임금, 복지에만 매몰된 결과 타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문제, 지역현안, 정치투쟁 등에는 무관심한 상황에 들어선지 오래다.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단 한차례의 연대파업조차 하지 못한 현대,기아, GM대우 노조의 상황,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배타적인 대기업 노조의 모습은 노동조합주의가 계급의식을 어디까지 파괴시키는지 보여준 전형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경제투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투쟁으로 의식이 성장해 갈 것이라는 정병기 교수의 발언은 안이할 뿐만 아니라, 매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노조활동가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배치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위기 상황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하지도 못하고 위축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10월 24일 있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자본과 정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반면, 이주 노동자들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임을 당당하게 발언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현재는 반자본주의를 명확히 하는 활동들을 의식적으로 강화할 때만이,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에 위축되지 않고 대담한 전망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노조와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관료주의에 대한 안일한 인식
셋째, 관료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또는 조직이 오래되면 관료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 정도로 보는 것 또한 안이한 인식이다. 관료주의의 문제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가차없는 실천을 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사회주의 몰락의 주요 원인으로 관료주의로의 타락을 꼽는다. 불굴의 혁명가들이 건설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관료주의로 붕괴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관료주의 문제는, ‘관료주의가 안 좋은 것이구나’ 하는 인식에 머무를 성질의 것이 아니라, 불굴의 혁명가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 만큼 비상할 정도의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는, 쉽게 말해 "어느 정도 살만한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집단이 노조 상층을 장악하고 있는 문제다. 직선제를 무작정 반대하는 상층 관료, 상층 정파의 담합으로 이루어지는 선거, 그에 소외되어 있는 노동자 대중이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이다.
정병기 교수는 이에 대해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할 조직과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자는 정도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활을 걸고 투쟁해야 쟁취할 수 있는 문제로 강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정병기 교수는 외국 노동운동 내 현장활동 모범사례로 프랑스의 SUD, 독일의 비판적 노조활동가 모임, 이탈리아의 에쎄레신다카토 등의 예를 들었는데,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소개한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금속노조 내 제대로 된 정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계급의식을 복원하고, 관료주의와 투쟁하며,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실천활동을 하는 정파 말이다. 이러한 흐름이 만들어져야,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금속노조를 포함한 민주노조운동 내 실질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준비하는 소수"가 되자!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이제는 이러한 고민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토론이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변혁산별> 독자들도 이러한 토론을 각자의 현장에서 제기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이 <변혁산별>에 투고되고, 논의의 결과로 제시되는 활동들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야 된다고 본다. 시기시기마다 기존 관성대로, 일정박기식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논의를 통해 제시되는 내용들을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은 실천을 하기 위함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다른 조직보다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병기 교수도 지적했듯이, 준비된 소수가 있어야, 노동운동이 바뀔 수 있다. 소수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핵심적으로 실천해야 할 내용을 정확히 하고,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들이 극복되고, 노동운동의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인터뷰 내용 중에 "까드르 노조"가 무엇인지 설명이 되지 않은 채로 나갔는데, 이런 부분은 현장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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