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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제정은 집단교섭 요구로 맞지 않다
2010년 2월 10일, 금속노조 경남지부 제17차 정기대의원대회가 개최된다. 정기대의원대회는 지난 사업을 평가하고 한 해 계획을 수립하여 경남지부 제6기 1년차 활동방향을 정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제출된 정기대의원대회 자료 초안을 보면 잘못된 평가 때문에 잘못된 계획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지자체 조례제정과 관련된 내용이 그것이다.
경남지부 최초 지역의제
경남지부는 2009년 집단교섭에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원 ▲실업자 기금 조성 및 장기실직 노동자 추가지원 ▲50인 이하 사업장 휴업노동자 직업훈련 추가지원 등에 관련된 조례제정을 노사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요구했다.
이는 경제공황 시기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집단인 미조직 노동자, 실업 노동자, 중소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계급적 요구라는 점과, 산별노조 지역지부가 소속 사업장을 넘어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요구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사진=금속노조 경남지부)
합의서가 아닌 선언문
그러나 이 같은 요구가 갖은 의미와 집단교섭을 통해 실제 얻어낸 성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먼저, 조례제정 요구는 교섭의 일반적인 결과물인 ‘협약’이나 ‘합의서’ 형태가 아니라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노사공동선언문’으로 별도 체결되었다. 또한 그 내용도 애초의 요구인 노사 ‘공동으로 추진한다’가 아니라 ‘공동으로 건의한다’로 바뀌었다.
더구나 체결된 노사공동선언문은 이후 실질적인 조례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선언문 내용대로 노사가 공동으로 조례제정을 건의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졌지만, 그 뒤 조례제정을 위한 창원시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기업사랑’ 하기에 바쁜 창원시가 노동자를 위한 조례를 건의한다고 해서 선뜻 들어줄 리 만무하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2009년 집단교섭의 주요 요구였던 조례제정은 선언문에 그치고 흐지부지 됐다.
잘못된 평가
이 같은 2009년 집단교섭 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첫째, 조례제정 요구가 ‘합의서’가 아니라 ‘선언문’으로 체결된 것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비록 현실적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는 앞날을 위해서도 우리 스스로 명확히 평가해 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것인데, 조례제정이 집단교섭의 요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서 전체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을 위한 조례제정 투쟁이 산별노조 지역지부가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집단교섭 요구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례를 제정하는 방법은 지방자체단체장이 발의하는 것과, 의원 발의, 그리고 주민 발의 등 3가지가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은 주로 의원 발의와 주민 발의 형태로 조례제정 운동을 벌였고 노동조합은 그 과정에 함께 해왔다. 반면 집단교섭에서 공동선언문은 창원시 건의를 통해 지자체가 조례 발의를 하게 하자는 것인데 이는 발의 당사자인 창원시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아무런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공허한 합의다.
즉, 산별노조 지역지부 역할의 하나로 조례제정을 해야 한다면 이는 진보정당과의 공조를 통한 의원 발의나 조합원, 시민의 힘에 바탕한 주민 발의를 통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집단교섭에서는 노사가 아무리 합의해 봐야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조례제정이 아니라, 노사합의를 통해 실질적 변화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역의제를 개발하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 세입자 임시거주시설 설치조례를 발의한 왕십리 주민들 (사진=오마이뉴스)
잘못된 계획의 반복
그런데 경남지부 사업평가에는 조례제정 요구와 관련하여 이 같은 비판적 평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조례제정 요구를 ‘우선교섭 요구안’으로 정한 것은 “경직된 방식으로 방침보다 교섭전술로 활용했어야 했으며 정세나 자체 역량에 비춰 봤을 때 과도한 설정이었다.”는 평가만 있을 뿐이다.
이 처럼 조례제정을 집단교섭 요구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해 아무런 평가가 없는 것은 두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첫째,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10년 계획에도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 경남지부 정기대의원대회 자료집의 제6기 1년차 사업계획 초안을 보면 “지역에서의 산별노조 역할 강화” 항목 아래 “고용안정 촉진 및 민생 조례제정 추진” 내용이 또다시 들어가 있다.
물론 이 내용만 봐서는 조례제정을 어떤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2009년 집단교섭에 대한 평가에서 조례제정 요구가 적절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업계획 초안 속의 조례제정은 2009년과 같은 방식의 노사공동선언문의 형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또다시 공허한 선언문에 그치게 될 것이다.
둘째, 2009년 집단교섭에서 합의한 공동선언문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가져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큰 성과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이 역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남지부가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조례제정 건의 공동선언문 채택을 성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집회 때 발언에서 마치 그것이 경남지부가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이야기 된 적은 여러 번 있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선언문’ 채택을 큰 성과인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조금 낯간지러운 일이다.
조례제정은 조합원 투쟁을 통해
조례제정은 집단교섭 요구로 맞지 않다. 노사가 합의해봤자 투쟁을 통해 시를 강제하지 않으면 아무런 현실적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요, 노사합의를 통한 건의는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없기 때문이다.
‘투쟁 없이 쟁취 없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다. 조례제정이 산별노조가 지역에서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면 그 것은 조합원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 노동조합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
조합원이 조례제정 발의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조직하고, 더 나아가서는 조합원이 사업장 내 노동자들과 사업장 밖 시민들의 발의를 조직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며, 만약 주민발의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나 시의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발의 당사자인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 그래서 그 힘을 통해 조례제정을 쟁취하는 것, 그것이 노동조합의 방식이다. ●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28호 (http://blog.daum.net/horura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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