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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왜 읽어야 할까?
나는 전직 삼성 반도체 노동자이자, 삼성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짧은 인생을 살다 간 故황민웅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다. 남편이 백혈병을 치료하느라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병상에서 보낼 때 나는 그의 병이 직업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나에게 무지하고 무심하다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나는 삼성의 무노조에 의한 노동자 탄압과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고 싶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삼성에서는 네가 일하는 곳이 위험하다고, 네가 다루는 물질에 노출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누구 하나 알려주는 이 없었다. 더군다나 산재 신청을 한 동료들의 소식은 커녕, 백혈병이나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물론 남편의 병이 직업병임을 주장하고 싸운 후부터 이 모든 것이 삼성의 농간 때문에 묻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하지만 만일 그 때 남편의 백혈병이 작업환경 때문이라는 의심을 했었다 하더라도 내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까?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과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말이다. 아니,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경로조차도 몰랐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당연히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관한 정보라고는 첨단 산업, 미래 산업 등 포장하는 말 뿐, 이렇게 발전된 산업 속에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이 유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흔히 운동권이라는 단체 안에서조차도 들어볼 수 없었다. 삼성이어서? 삼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아니면 너무 어려운 문제여서였을까? 나는 삼성 안에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무난히 묻힐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당한 사람이 제일 억울하다고 했던가? 다른 피해자의 제보와 노력을 통해 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삼성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의 작업환경 때문에 생긴 백혈병, 암, 희귀질환, 여성 질환 등 각종 피해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본격적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 만들어지도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삼성의 언론 탄압으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많이 알려지지 못해서 항상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때마침 그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고마운 책이 출판되었다. 바로 반올림과 박일환님이 공동 출간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보이는창 펴냄)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삼성반도체 얘기가 주로 담겨있지만, 이를 통해 삼성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과 노동자 피해는 물론 자본만을 옹호하고 있는 정부의 작태까지 엿볼 수 있다.
내가 그러했듯 많은 노동자들이 몰라서 묻어두는 과실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나는 희망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고생하신 많은 분들에게 수고하셨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미 현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인들에게 고개 숙여 가슴깊이 애도를 표한다.
- 정애정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인터넷 카페
http://cafe.daum.net/samsunglabor
*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블로그 둘러보기 : http://bolg.daum.net/horura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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