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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성자 최은석
댓글 0건 조회 2,924회 작성일 2010-05-14

본문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얼마 전에 제 생애에 가장 감동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몇 달 전부터 장애인들의 컴퓨터 교육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엑셀 교육을 하려고 했었는데 아직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수준이 안 되어 한글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이라 언어 소통도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일이 많아 때로는 날짜를 바꾸어 가며 하기도 하는데 배우는 이들의 열정도 대단합니다.
1:1 교육이어야 하기  때문에 세명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수업을 하려고 갔을 때 그들이 나에게 옆방에 가자고 했습니다.
뭔가 모르지만 따라 갔더니 저를 앞에 세워두고 셋이서 발음도 잘 안되는 목소리로 "스승의 은혜"를 부르더군요.
상상이 됩니까?
그 감동은 정말 뭐라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낮에 그들이 만들었다는 색종이 꽃을 가슴에 꽂아 주었습니다.

이런 이들도 인간답게 살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제가 하는 노동운동, 정말 몸 바쳐 계속 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요즈음 온통 올해 투쟁, 어덯게 승리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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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점에서 올해 임단투,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부장 최은석


노동조합 활동 자체가 다 무너진다고 아우성이지만 노동조합의 대응은 아직 미지근하기만 할 뿐이다.

올해 1월 1일 노동조합법이 날치기 통과될 때도 그렇고 5월 1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심위)에서 또 한 번 날치기로 세부 안을 통과해도 투쟁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총파업을 남발해서도 안 되겠지만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노조 진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의 힘은 단결에, 더 큰 단결에 있다. 하지만 민주노조 진영은 왜 이렇게 매번 기회를 놓치고 투쟁을 하지 못하는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같은 거대한 투쟁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모든 노동자들이 좋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고 배가 불러서인가? 아니면 여전히 잔업, 특근 하나에 목을 매야 하는 경제적 이해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인가?

현장 순회를 하며 조합원들과 이야기해 보면 단결해야 한다고, 하나로 뭉쳐서 싸워야 한다고, 대가리 박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절규하다시피 말하는 조합원들을 아직도 많이 만난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모두들 남 탓을 한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은 투쟁을 하고 싶은데 다른 조합원들(간부나 지도부든, 또는 다른 지부나 지회를 지칭하든)이 투쟁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조합원 핑계 대고 조합원들은 간부들을 욕한다.

작은 사업장은 큰 사업장을 탓하고 그 큰 사업장은 더 큰 사업장을 탓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조합원들이 확실히 투쟁에 나선다면 나도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도부가 확실히 싸우자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지도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조합원들도 따라주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혼자 싸우기는 두렵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주저함에는 결국 두려움이 있고 이 두려움은 불신이라는 유령을 등에 업고 힘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고상한 똥폼만 잡고 허세에 젖은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는 두려움에 빠져 있다. 지도부를 탓하고 조합원 핑계를 대고 다른 사업장을 욕하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적(상대)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소위 자기 관리(흔히 마음을 닦는 수양과 같은 것)를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면 된다. 그리고 자기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상대)이 분명히 있는 상태에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나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고(공존도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상대방에게 항복하고 그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엄밀히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살아가는 모습은 이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다면 결코 자본의 노예로 살 수는 없다.

노동을 착취해서 살 수밖에 없는 자본에 대항해서 싸우고 최소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상황에서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삶은 노예와 같은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자본은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을 갑자기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노동자의 자존심에 기름을 부어 거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매번의 투쟁을 놓치고 가는 우리의 모습은 서서히 노예로 전락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수년 동안 노동조합은 제대로 된 총파업 투쟁을 해보지 못했고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면을 알아차린 자본과 정권은 우리의 목을 더욱 더 조여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더 큰 두려움이라는 늪에 빠져 꼼짝 못하고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두려움은 실상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러한 상태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상대에 정면 돌파하는 행동을 할 때 우리 마음 속의 두려움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정면돌파’하는 행동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87년 대투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안다. 87년 대투쟁 당시 우리는 우리가 행동으로 나선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노동자들 자신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바로 이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결이다. 행동으로 나서되 나 혼자서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같이 나서는 것이다. 나 혼자 나서면 자칫 개죽음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두려운 상대에게 맞서 정면으로 받아치는 행동으로 나서되 가능하면 많은 이들과 함께 단결해서, 연대해서 맞받아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게 왜 안 되는가?

여기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지도부와 조합원, 조합원 상호 간, 사업장을 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러면 이 신뢰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믿는 게 먼저인가, 아니면 지도부가 조합원을 믿는 게 먼저인가?

이는 양자 간의 수준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가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하지만 아이의 지식수준이 점점 높아지면 아이는 부모를 부분적으로는 믿지만 항상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든 도덕이든 마찬가지다. 청소년만 되어도 보모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때에도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신뢰를 보내면 아이도 역시 부모를 신뢰하게 된다. 설령 무식한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는 자기를 믿어주는 부모를 믿는다.

이 때 신뢰란 단순히 지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신뢰는 그 이상의 것이다.

노동조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도부를 신뢰한다는 것은 지도부가 이 세상 모든 것에 있어서 우월한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도부가 좀 무식하고 단순하더라도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신뢰인 것이고 함께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지도부가 먼저 조합원들을 믿을 때 생기는 것이지 조합원들에게 ‘나를 믿으라.’ 고만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의 지도부는 어떠한가 보자. 오해 없길 바란다. 나는 여기서 지도부 중 어느 한 사람을 꼭 지칭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노동조합의 지도부들이 거의 대부분 그러했을 것이라고 본다. 노동조합의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나오는 것들을 보면 결국 “조합원들의 소리를 들어라!” 는 것으로 모아진다. 나는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합원들 믿어라!” 는 것으로 해석한다.

올해 같이 중요한 투쟁 시기에 조합원들에게 하는 교육의 내용을 보면 수 십 년 동안 해온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정세교육과 방침교육, 이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조합원들의 상태에서 정말 가장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지도부가 ‘올해 투쟁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그 고민을 조합원들과 나누어야 한다. 주입식 교육은 조합원들을 자꾸 수동적으로 만든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보면 그들의 고민의 깊이나 지도부의 고민의 깊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부가 조합원과 함께 자신의 깊은 고민을 나누는 것! 조합원들에게 이것 보다 더 지도부의 신뢰를 드러내는 모습이 또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노조 교육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조합원들은 이런 정도도 잘 모르고 있으니 현재의 상황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정세교육, 방침교육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려꽂기’ 식 지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러나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아닌 주입식 교육은 그러한 잘못을 여전히 되풀이 하는 것이 된다.

지금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총파업이 얼마나 힘 있게 실천될 것인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금속노조의 조직력으로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할까? 이대로 계속 가면 어렵다. 정말 어렵다. 금속노조는 서서히 침몰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이라도 조합원들의 잠재된 투쟁 동력을 실제로 끌어내는 활동이 절실하다.

지도부는 더 이상 단순한 상황 설명이 아니라 투쟁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지도부의 결의를 보이고 지도부의 고민의 지점을 조합원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조합원들은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회복하게 되고 함께 싸우자는 결의를 확인하고 자신도 동참하겠다는 결의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두려움을 극복할 준비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투쟁의 실천이다.

폼 나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 무식하게 싸우는 노동자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자. 진짜 무서운 놈은 무식하게 대드는 놈이다. 그럴듯한 논리를 들이대려고 하고 고상하고 세련된 전략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던 지난날의 잘못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자. 노동자답게 대가리 박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듯이 싸움판을 벌리자.

앞 뒤 재지 말고 단순하게 겁 없이 싸우자. 명분? 국민들의 시선? 무식한 노동자라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다 버리자. 지금은 87년과 같은 과감한 투쟁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 밖에 없다. 이 단순한 길에서 벗어나면 추락만 남는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본가들에게 그 두려움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사족 하나를 더 달자면 이제 더 이상 아무런 효력도 없는 집회투쟁은 그만하자. 진정으로 결의를 높일 수 있는 결의대회가 아니라면 집회로 투쟁을 대체하지 말자.

이번 임단협 투쟁은 민주노조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 금속노조의 투쟁일정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현장이 어렵다면 남은 기간 동안 모든 조직을 동원해서 모든 것에 최우선해서 현장을 돌며 조합원을 설득하자.

다른 사업장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사업장을 철저히 챙겨서 반드시 투쟁방침을 수행하도록 하자. 교섭 진행 정도가 아직 투쟁을 실행할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번만은 무조건 일정대로 투쟁을 하자. 87년 투쟁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준비가 다 되어서 투쟁을 했던가? 지금은 노동조합을 처음 하듯이 치고 나가야 할 때이다. 활을 계속 겨누기만 해서는 목표물을 맞출 수 없다. 시위를 당기자. 투쟁을 행해 돌진하자. 이것이 바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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